#. 친구인 A군과 B군이 집 근처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다 동네 아저씨에게 들켰다. 이내 둘은 불씨를 꺼트린 담배를 감추고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이뤄진 똑같은 행동이었지만, 이 아저씨는 A군만 나무라고 B군에게는 오히려 격려의 따뜻한 말을 전했다.
A군은 공부는 안하고 친구 유혹해 담배나 피우는 등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것이 이 아저씨의 생각이었고, 실제로 꾸중하며 내뱉은 말이다.
반면 B군에게 이 아저씨는 “딴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며 “공무를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호기심으로 담배 한 번 피워 봤구나”라고 다독였다.
함께 농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짧은 머리까지 비슷한 절친 A, B군에게서 찾을 수 있는 다른 점은 입고 있는 고등학교 교복뿐이었다. A군은 소위 성적이 다소 미흡한 학교, B군은 지역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 사례는 김종문 도의원이 전한 천안시의 흔한 모습이다. 지역 명문으로 알려진 고교 동창생들이 웃으면서 회상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비명문으로 알려진 고교 동창생들이 격분하며 쏟아내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기도 하다.
도내 수많은 A, B군들은 이런 일을 겪은 후 돈독했던 친구 사이가 어색해졌고, 어른들에 대한 분노로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학교 이름에 따르는 고정관념을 표출한 아저씨의 말 한마디가 갈등으로 번지는 꼴이다.
천안 고교 평준화를 위해 수년간 노력하며 지역 현황을 분석한 김 의원은 2012년 학교폭력 설문조사 1위, 가출청소년 및 청소년 중범죄 증가세, 최근 3년간 학업 중도포기학생 4200여명으로 전국 1위 등이 성적과 비평준화로 인한 서열화 및 차별과 무관치 않다고 단언했다.
성적 하향을 우려한 비평준화 반대의견에 대해서는, 오히려 비평준화 실시 후 18년간 16개 시·도 교육청 중 수능평균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반박했다.
내신을 보는 현 대입제도에서의 직접적인 손해도 만만치 않다. 성적 상위권 학생끼리 한 고교에 모여 내신 경쟁을 하다 보니, 천안은 비슷한 규모의 도시들에 비해 명문대 진학률이 5배 이상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김 의원은 “천안에서 학력이 떨어지는 학교 학생들은 부끄럽다는 이유로 교복을 갈아입고 돌아다닌다”며 “평준화가 되면 고교 서열화 문화가 사라지고 교복에 따른 고정관념과 차별, 갈등 등이 해소돼 지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3년 춘천, 원주, 강릉지역의 고교평준화를 추진·실시한 강원도교육청 이웅 장학사는 “평준화 실시 후 선호·비선호 학교가 사라졌으며, 이들 학교에 대한 편견이 급속히 해소됐고 학생들에 대한 생활지도가 훨씬 수월해 졌다”며 “더불어 학력이 상승해 대학진학 시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 스스로 교교 평준화에 대해 만족해 한다는 것이다.
이 장학사는 “지역내 73.04%의 학생들이 평준화된 학교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내포=유희성 기자 jdyhs@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