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배재대 총장 "남 섬길 줄 아는 사람 기르죠"

김영호 배재대 총장 "남 섬길 줄 아는 사람 기르죠"

'겸손과 배려' 대학 당훈처럼 됨됨이를 갖춘 인재 키워야 정부주도 개혁 길게보면 한계, 학교 자체 특성화 분야 선정해 시대에 맞는 경쟁력 갖춰야죠

  • 승인 2015-01-06 13:26
  • 신문게재 2015-01-07 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중도초대석]김영호 배재대 총장

청바지를 즐겨입고 학생들과 농구를 하며 친구처럼 지내던 젊은 교수는 어느덧 그 대학을 책임지는 총장 자리에 올랐다.
10여년간의 독일 유학생활과 존경하는 철학자 막스 베버 덕분에 몸에 밴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고는 지금도 그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 됐다. 자유분방한듯 하면서도 당당하고 격조있는 언행 뒤에는 겸손과 배려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31일, 한해가 저물어가는 마지막 날, 학령인구 감소와 구조개혁 등 대학의 위기속에서도 6대 총장에 이어 7대 총장으로 연임에 성공한 김영호 배재대 총장을 만나 그만의 교육철학과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학생들과의 스킨십… 눈높이 총장=김영호 총장은 총장 취임 후 '오늘 점심은 총장님이 쏜다!'는 주제로 솔로들끼리 자장면을 먹으며 위로하는 날인 4월 14일 블랙데이에 학교 잔디밭에서 학생들과 자장면을 먹으며 스킨십을 나눈다. 흔히 '빼빼로 데이', '가래떡 데이'로 알려진 11월 11일에는 '전공강의를 자랑하는 글'을 올린 학생들에게 가래떡을 직접 배달해 학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등 격의없는 눈높이 행보를 펼쳐왔다.

학생들과의 이런 친근한 스킨십과 유대관계는 김 총장이 1991년 배재대에 교수로 부임했을때부터 계속돼 온 행보인지라 지극히 자연스럽다.

“처음 대학에 왔을때는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고 학생들과 농구도 했죠. 복학생들에게는 늘 환영식을 해주면서 자리를 갖게 됐어요. 제 오른쪽에는 가장 어린 학생을 앉히고, 왼쪽에는 가장 연장자 학생을 앉게 하니까 학년 나이가 파괴되고, 자기들끼리도 가까워지더군요. 복학생들과 친해지면 학과 운영하기가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하하하).”

흔히 '교수' 하면 연상되는 권위주의를 깬 것을 김 총장은 교단에서의 최고 보람으로 꼽고 있다.

김 총장의 이같은 권위주의 탈피는 학교 경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관리라는 말은 적절치 않고, 같이 지내는 것”이라며 소통과 동행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김 총장은 지난달 배재학당 이사회로부터 6대 총장에 이어 7대 총장으로 연임이 확정됐다.

“지난 2010년 처음 총장에 선출됐을때보다도 어깨가 더 무겁다”는 김 총장은 “지난 4년간 대학을 이끌어 오면서 많은 것을 해내려고 했지만 스스로 점수를 매기자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선거 당시 발표한 'SMART+1885발전전략'을 바탕으로 “지속성장 자율생태대학, 국제화 선도대학, 고품격 중심대학, 나눔과 섬김으로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지역 가치를 창조하는 대학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독일생활과 아흔 셋의 노모=김 총장은 대학 2학년때 만난 첫사랑 부인과 7년 연애끝에 결혼한 순정파다.

독일 유학시절 10년 동안 비싼 비행기 값 때문에 한번도 한국에 올 수 없었던 김 총장에게 아내와 딸은 긴 이국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부인은 김 총장과 함께한 독일 유학생활 시절 호텔 청소에서부터 중국집, 공장 등을 가리지 않고 일하며 김 총장의 유학생활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았다.

힘든 유학생활 속에서도 매년 열리는 재독 한국인 지역축구대회는 김 총장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재독 한국인 축구대회에서 우승하면 한국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나갈 수 있었거든요. 비싼 비행기삯에 엄두도 못내는 한국행이었으니 죽기살기로 뛰었죠. 그런데 제가 속했던 팀은 단 한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답니다(하하하).”

김 총장이 박사 과정에 들어간 후 그 어렵다는, 자유민주당에서 주는 '정당장학금'을 받게 돼 생활이 다소 여유가 생기기까지는 고단한 유학생활이었다.

장인 어른이 돌아가신 것도 유학생활이 끝난후에야 알게 됐다.

알았어도 오지 못할 이역만리였으니 작고한 장인의 마지막 유언도 “(독일간 김 총장 부부에게는)알리지 말라”였다.

힘든 유학생활의 끝은 그래도 벅찬 감동으로 남아 있다.

독일 트리어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던 날 김 총장은 그 학과 전통대로 사회학과 전용 강의실에서 사다리를 타고 천장에 올라갔다.

“박사시험 구두 시험을 통과하니 그 곳에 제 이름을 쓰라고 하더군요. 천장에 제 이름을 쓰고 나오자 학과에서 꽃다발을 주는데 화려한 졸업식보다는 그 때 그 천장에 제 이름을 쓰던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죠.”

지금도 가끔 김 총장에게는 이름 모를 메일이 오곤 한다. 김 총장의 뒤를 이어 트리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한국인 후배들이 김 총장의 이름을 보고 수소문해 보내는 메일들이다.

김 총장이 10년간의 독일 유학생활을 아내와 함께 하는 동안 이제는 아흔 셋이 된 노모는 기약도 없이 떠난 아들이 공부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10년 세월을 기다렸다. 그래서 김 총장은 귀국하자마자 지금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재가할 법도 하셨는데,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키우셨어요. 저의 10년간의 독일 유학생활을 마음으로 함께 하신거죠.”

여전히 관사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김 총장은 그래서 아내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에둘러 '의리'라고 표현한다.

“힘든 삶을 사셨는데 제가 의리로라도 잘해드려야죠.”

▲전통과 학풍의 배재대… 됨됨이를 갖춘 인재 키우자=김 총장은 삶의 멘토를 묻는 질문에 지체없이 막스 베버(Max Weber)를 꼽았다. 합리적이고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치관은 그의 삶 전반에 녹아있다.

김 총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역시 '남들이 받아들이는 사람, 됨됨이가 갖춰진 사람'이다.

“우리 대학의 당훈이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예요. 지난 130년간 배재인들은 이 당훈에 근거해 교육을 받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당훈의 기본이 바로 겸손과 배려입니다. 당당한 배재인, 자신의 확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 총장이 이같이 올곧은 교육관을 갖고 배재인을 양성하고 있지만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구조개혁과 같은 대학의 위기는 배재대에게도 분명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앞서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서 여러번 고배를 마신 아픔도 있다.

김 총장은 “교육부가 요구하는 핵심에 대해 접근 방식에서 차이를 보였다”며 “다만 교육부의 정부주도 대학구조 개혁은 단기적으로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대학들이 설립 목적에 맞게 교육하고 학생들이 그 교육에 만족하는지 여부에 대한 평가에 주력하고,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는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총장 취임 후 단과대학을 9개에서 5개로 축소하고 인접영역 학문을 묶어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 융복합 학문을 접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놨던 김 총장은 “올해부터는 교육부 지방대 특성화 사업과는 별도로 전체 구성원이 숙의해 자체적인 특성화 사업 분야를 선정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총장은 이를 위해 'Pai Chai Pride'(대학브랜드 가치제고)분야 3개 사업과 'Pai Chai Best'(선도적인 특성화 교육학과 지원)분야 6개 사업을 선정했다.

“시대 트렌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춰 강력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김 총장은 매사 열정적인 삶의 방식으로 인해 집에 오면 번아웃이 될 만큼 녹초가 된다. 그래서 하루 일과중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바로 '멍하게 있기'(Black Out)다. 꿈을 잃은 청년들에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로 패배의식을 극복하라”고 조언하는 김 총장은 서양식 신교육을 처음 펼친 배재학당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크다.

앞으로의 삶의 계획은 '더불어 사는 삶'. 소통과 배려의 리더십,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합리적인 유연성을 지닌 김 총장에게서는 젠틀맨 이미지와 세련된 매너가 주는 편안함과 함께 학생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면모가 느껴졌다.

▲김영호 총장은...

1952년 3월 8일생. 고려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독일 하이델베르그대학과 프랑크푸르트대학, 트리어 대학 사회학과에서 수학했다. 1987년 독일트리어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1989년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배재대 교수로 임용돼 기획홍보처장과 사회과학장 등을 역임하고 2011년 3월 제6대 배재대 총장으로 선출됐다. 2014년 12월에는 제7대 총장으로 연임이 확정됐다. 한국평가원 대학평가인증위원회 위원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사로도 활동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현대사회의 구조와 변동(사회비평사)’, ‘현대사회를 진단한다(논형)’등이 있다.

대담=한성일 취재3부장(부국장)

정리=오희룡 기자 hu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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