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뜨거운 입김으로 새벽을 여는 사람들

  • 사회/교육
  • 미담

[르포]뜨거운 입김으로 새벽을 여는 사람들

동트기 전 인력소개소 북적… 요즘같이 일자리 없을때는 몇시간 추위에 떨고도 허탕 빙판길 비질하는 청소원에 촛불로 버티는 어물전 상인도… “일 있다면 추위 쯤이야”

  • 승인 2014-12-18 18:03
  • 신문게재 2014-12-19 6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 18일 오전 5시 30분 대전 도마동 서부인력공사에서 하모씨 등이 하루 일을 기다리고 있다.
▲ 18일 오전 5시 30분 대전 도마동 서부인력공사에서 하모씨 등이 하루 일을 기다리고 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18일 오전 5시 10분 대전 서구 한 인력소개소에 조선족인 하모(35)씨가 가방을 내려놓는다. 한참을 걸어왔는지 코끝에서는 허연 입김이 푹푹 쏟아졌고, 가방을 벗은 어깨에서는 김이 살짝 올라오는 듯 보였다.

현장에 나가려면 오전 7시까지 족히 두 시간은 기다려야하지만, 하씨는 문도 열지 않은 인력소개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오전 5시 20분 소개소에 불이 켜지고 오전 6시쯤 하씨를 포함해 남녀 20여명이 현장 일을 받으려고 기다렸다.

오전 7시 미장 기술자인 50대 김씨가 먼저 일을 받아 떠났고 철근을 다루는 송씨에 이어 공사장 청소에 여성 3명이 나가면서 인력사무소는 한적해졌다.

휴대폰만 만지작이며 일을 기다리던 하씨의 이름이 불리고, 하씨는 가방을 메고 영하 10도의 거리로 발걸음을 뗐다. 하씨는 “일거리 없는 겨울에는 일찍 나와야 허탕 안쳐요. 추위요? 내복 하나 더 입으면 돼요”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서구 거리청소요원 김갑진(60)씨는 얼음장처럼 굳은 손으로 거리를 쓴다.

지난 가을 끝없이 떨어지던 낙엽을 쓸어 담느라 욱씬거리는 손목과 어깨가 풀리기도 전에 겨울 맹추위가 찾아왔다.

빗질하며 한참을 걷다 보면 몸에서 열이나 땀에 젖더라도 손가락과 발가락은 유난히 시렵고 나중에는 쥐가 난듯 감각이 없어진다.

새벽 5시 30분에 나와 오전 10시 출석 확인장소인 컨테이너박스에 모이기 전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 추위를 버티는 힘이다.

김씨는 “하루 중 제일 추운 시간은 밤이 아니라 동이 튼 직후”라며 “겨울 빙판길에 넘어지기도하지만, 날씨 탓을 해서 뭐하겠나”고 말했다.

오전 10시를 넘어 날씨는 조금씩 풀렸지만, 최명희(79·여·가명)할머니가 있는 대전 중앙시장은 여전히 얼음골이다. 봇짐을 지고 대전과 충북 전통시장에서 갈치며 조기를 팔다가 대전 중앙시장 은행교 노상에 정착한 게 37년째다. 그 사이 홍명상가가 만들어졌다 허물어졌고, 아들 셋은 장성해 더 큰 도시에 나가 있다.

세상은 변했어도 최씨가 중앙동 은행교 노상에서 갈치를 파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가 겨울에 맞서는 도구라고는 촛불 세 개와 몸에 걸친 옷 몇 겹이 전부다.

양철통 속에 촛불을 켜두고 그 위에 앉아 손님이 올 때까지 망부석처럼 기다린다. 추위에 돌멩이처럼 언 갈치는 40년 경력의 칼질에도 좀처럼 먹히지 않았다.

최씨는 “지난 이틀간 집에 있었더니 머리가 지끈거려 애들 말리는 걸 몰래 나왔다”며 “이게 뭐가 춥다고 난리여, 방안에 난로만 붙들고 있으니 햇볕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르는겨”라며 손사래 쳤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4.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5.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1.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2.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3.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4.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5.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