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오전 5시 30분 대전 도마동 서부인력공사에서 하모씨 등이 하루 일을 기다리고 있다. |
현장에 나가려면 오전 7시까지 족히 두 시간은 기다려야하지만, 하씨는 문도 열지 않은 인력소개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오전 5시 20분 소개소에 불이 켜지고 오전 6시쯤 하씨를 포함해 남녀 20여명이 현장 일을 받으려고 기다렸다.
오전 7시 미장 기술자인 50대 김씨가 먼저 일을 받아 떠났고 철근을 다루는 송씨에 이어 공사장 청소에 여성 3명이 나가면서 인력사무소는 한적해졌다.
휴대폰만 만지작이며 일을 기다리던 하씨의 이름이 불리고, 하씨는 가방을 메고 영하 10도의 거리로 발걸음을 뗐다. 하씨는 “일거리 없는 겨울에는 일찍 나와야 허탕 안쳐요. 추위요? 내복 하나 더 입으면 돼요”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서구 거리청소요원 김갑진(60)씨는 얼음장처럼 굳은 손으로 거리를 쓴다.
지난 가을 끝없이 떨어지던 낙엽을 쓸어 담느라 욱씬거리는 손목과 어깨가 풀리기도 전에 겨울 맹추위가 찾아왔다.
빗질하며 한참을 걷다 보면 몸에서 열이나 땀에 젖더라도 손가락과 발가락은 유난히 시렵고 나중에는 쥐가 난듯 감각이 없어진다.
새벽 5시 30분에 나와 오전 10시 출석 확인장소인 컨테이너박스에 모이기 전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 추위를 버티는 힘이다.
김씨는 “하루 중 제일 추운 시간은 밤이 아니라 동이 튼 직후”라며 “겨울 빙판길에 넘어지기도하지만, 날씨 탓을 해서 뭐하겠나”고 말했다.
오전 10시를 넘어 날씨는 조금씩 풀렸지만, 최명희(79·여·가명)할머니가 있는 대전 중앙시장은 여전히 얼음골이다. 봇짐을 지고 대전과 충북 전통시장에서 갈치며 조기를 팔다가 대전 중앙시장 은행교 노상에 정착한 게 37년째다. 그 사이 홍명상가가 만들어졌다 허물어졌고, 아들 셋은 장성해 더 큰 도시에 나가 있다.
세상은 변했어도 최씨가 중앙동 은행교 노상에서 갈치를 파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가 겨울에 맞서는 도구라고는 촛불 세 개와 몸에 걸친 옷 몇 겹이 전부다.
양철통 속에 촛불을 켜두고 그 위에 앉아 손님이 올 때까지 망부석처럼 기다린다. 추위에 돌멩이처럼 언 갈치는 40년 경력의 칼질에도 좀처럼 먹히지 않았다.
최씨는 “지난 이틀간 집에 있었더니 머리가 지끈거려 애들 말리는 걸 몰래 나왔다”며 “이게 뭐가 춥다고 난리여, 방안에 난로만 붙들고 있으니 햇볕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르는겨”라며 손사래 쳤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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