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나는 매우 의미가 있는 세렌디피티라 불리는 용어를 발견했다네. 당신에게 이 말밖에 전할 수 없기 때문에 설명을 하겠네. 그러면 용어의 정의보다도 그것이 어떻게 파생됐는지를 이해할거네. 나는 예전에 세렌딥의 세 왕자라는 단순한 동화책을 읽은바 있다네. 이들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여행의 막바지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들을 총명함으로 해결했는데, 예를 들면 노새(사실은 낙타)가 지난 길을 저녁 늦게 가면서 오른쪽보다 왼쪽에만 풀이 심하게 뜯겨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노새가 오른쪽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야. 세렌디피티라는 말을 이해하겠나?'
월폴은 먼 친척이자 친구인 호레이스 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렌딥의 세 왕자'라는 우화에 등장하는 왕자들이 어떻게 여행했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단지 인도양의 실론, 즉 스리랑카를 가리키는 세렌딥(serendip)에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는 측면만 강조하였다. 이 이야기는 볼테르의 자디그, 이스라엘의 탈무드에도 녹아들어가 있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16세기에 유럽에서 세렌딥의 세 왕자가 번역되고, 18세기에 월폴이 이 용어를 만든 이래 문학과 경영, 과학,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언급될 정도로 세렌디피티는 이제 흔한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이 세렌디피티를 학문의 영역에서 현대적으로 천착한 이는 로버트 머튼이다. 과학사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을 세운 조지 사턴의 제자였던 머튼은 1946년에 경험적 연구에서 예기치 않고, 불규칙적이며 전략적인 자료를 일컬어 '세렌디피티 패턴'이라 했다. 또 미발표 논문인 '세렌디피티의 여행과 모험'이란 저서에서 200여년 간 세렌디피티 개념의 역사를 소개하고, 시도하지도 않은 사물을 우연한 사건과 기지로 발명한 과학사회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X-레이나 페니실린이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것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머튼은 일상에서 관찰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관찰을 통해서 기존 이론과 불일치되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것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연구자로 하여금 자료를 조사하도록 유도한다. 관찰은 또 다른 관찰을 촉발시키고 관찰로부터 추론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서 지적 체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연구자가 조사하는 것은 이론을 확인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 우연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은 가설을 통해서 이론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결과로서 예기치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이 아니고 노력이며, 연구를 위한 하나의 전략이기도 하다.
루틴한 일상생활의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위해 노력하는 자에게만 돌아가는 행운이지 결코 게으른 자가 얻을 수 있는 벼락행운이 아니며, 세렌디피티는 연구를 중단하지 않고 지식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자에게 다가온다.
이 기회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은 조직에서 연구자의 자율성이 있는 곳에서 나온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우연적인 발견을 세렌디피티와 동일하다는 관념을 갖고 있지만, 우연한 발견도 연구의 부산물임이 분명하다. 최근 기술무역수지 적자가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라는 결과를 보면 장기간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는 원천기술보다 단기간에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기술투자를 선호한 결과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대가 오더라도 기술종속을 면치 못한다. 이러니 중국에서 번 돈을 미국과 일본에 갖다 바치는 가마우지 경제가 지속되는 것이다. 어찌 세렌디피티의 행운을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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