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세렌디피티, 그리고 준비된 결과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세설]세렌디피티, 그리고 준비된 결과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승인 2014-10-27 13:49
  • 신문게재 2014-10-28 17면
  •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그날 그곳에 가면 누구를 만날 것 같은 예감, 그래서 그곳에 서 있는 곳의 카페 이름이 '세렌디피티'다. 한 겨울에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가 러브 스토리를 이루는 영화제목도 세렌디피티다. 그러나 과학기술사에서 우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우연하게 보일뿐 모든 발견이나 발명은 연구를 위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연구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우연한 기회에 뜻밖의 발명이나 발견을 이룩하는 행운을 세렌디피티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운 좋게 찾아오는 행운이 결코 아니다.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호레이스 월폴이다. 그는 영국의 초대 총리를 지낸 로버트 월폴의 아들로, 현실정치에도 참여했었지만 소설가로 지낸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다. 호레이스 월폴은 1754년 1월 28일 친구인 호레이스 만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나는 매우 의미가 있는 세렌디피티라 불리는 용어를 발견했다네. 당신에게 이 말밖에 전할 수 없기 때문에 설명을 하겠네. 그러면 용어의 정의보다도 그것이 어떻게 파생됐는지를 이해할거네. 나는 예전에 세렌딥의 세 왕자라는 단순한 동화책을 읽은바 있다네. 이들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여행의 막바지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들을 총명함으로 해결했는데, 예를 들면 노새(사실은 낙타)가 지난 길을 저녁 늦게 가면서 오른쪽보다 왼쪽에만 풀이 심하게 뜯겨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노새가 오른쪽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야. 세렌디피티라는 말을 이해하겠나?'

월폴은 먼 친척이자 친구인 호레이스 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렌딥의 세 왕자'라는 우화에 등장하는 왕자들이 어떻게 여행했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단지 인도양의 실론, 즉 스리랑카를 가리키는 세렌딥(serendip)에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는 측면만 강조하였다. 이 이야기는 볼테르의 자디그, 이스라엘의 탈무드에도 녹아들어가 있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16세기에 유럽에서 세렌딥의 세 왕자가 번역되고, 18세기에 월폴이 이 용어를 만든 이래 문학과 경영, 과학,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언급될 정도로 세렌디피티는 이제 흔한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이 세렌디피티를 학문의 영역에서 현대적으로 천착한 이는 로버트 머튼이다. 과학사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을 세운 조지 사턴의 제자였던 머튼은 1946년에 경험적 연구에서 예기치 않고, 불규칙적이며 전략적인 자료를 일컬어 '세렌디피티 패턴'이라 했다. 또 미발표 논문인 '세렌디피티의 여행과 모험'이란 저서에서 200여년 간 세렌디피티 개념의 역사를 소개하고, 시도하지도 않은 사물을 우연한 사건과 기지로 발명한 과학사회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X-레이나 페니실린이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것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머튼은 일상에서 관찰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관찰을 통해서 기존 이론과 불일치되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것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연구자로 하여금 자료를 조사하도록 유도한다. 관찰은 또 다른 관찰을 촉발시키고 관찰로부터 추론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서 지적 체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연구자가 조사하는 것은 이론을 확인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 우연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은 가설을 통해서 이론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결과로서 예기치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이 아니고 노력이며, 연구를 위한 하나의 전략이기도 하다.

루틴한 일상생활의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위해 노력하는 자에게만 돌아가는 행운이지 결코 게으른 자가 얻을 수 있는 벼락행운이 아니며, 세렌디피티는 연구를 중단하지 않고 지식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자에게 다가온다.

이 기회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은 조직에서 연구자의 자율성이 있는 곳에서 나온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우연적인 발견을 세렌디피티와 동일하다는 관념을 갖고 있지만, 우연한 발견도 연구의 부산물임이 분명하다. 최근 기술무역수지 적자가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라는 결과를 보면 장기간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는 원천기술보다 단기간에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기술투자를 선호한 결과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대가 오더라도 기술종속을 면치 못한다. 이러니 중국에서 번 돈을 미국과 일본에 갖다 바치는 가마우지 경제가 지속되는 것이다. 어찌 세렌디피티의 행운을 바라겠는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1.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2.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3.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4.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5.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헤드라인 뉴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전교육청은 바른 식생활 교육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교육부 2024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 800개 표본학교의 중·고등학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흡연, 음주, 식생활, 정신건강 등에 대해 자기기입식 온라인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대전지역 학생들의 아침..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