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 미워도 다시 한 번

저축, 미워도 다시 한 번

소비 확대정책 더불어 부채 증가, 가계저축률 15년째 10% 못넘어 28일은 저축의날… 적정한 저축은 경제 기본이자 미덕

  • 승인 2014-10-26 12:59
  • 신문게재 2014-10-27 10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우리는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자주 듣곤했다. 힘들고 고달픈 생활을 해야 했던 우리 부모들의 말이다. 저축의 날은 과거 한국 경제가 장기간에 걸쳐 고속 성장을 하는 밑거름이 저축이었고, 최근에는 저축의 날 자체가 퇴색해져 가는 것이 무엇보다 아쉽기만 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소비가 경제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인 것만은 부인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적인 소비가 미덕인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건전한 소비가 더 중요하다. ‘저축의 날’의 의미를 돌아보고 미래의 소비인 저축에 대해 알아보자.

(편집자 주)


▲천덕꾸러기 신세 ‘저축의 날’= 내일은 제51회 ‘저축의 날’이다.

매년 10월 마지막 주 화요일로 지정된 ‘저축의 날’은 1964년 제정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국가 주도 경제개발 시대에 막대한 정책적 투자자금이 필요해 정부 차원에서 개인들의 저축을 장려한다는 취지였다. 1969년에는 저축 장려를 담당하는 저축추진중앙위원회까지 만들었고, 이 위원회는 이후 1997년까지 저축의 날 행사를 준비했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표창을 수여할 만큼 행사가 크게 진행됐다. 저축추진중앙위원회가 해산되고 나서 1998년부터는 한국은행이 운영해오다 2008년부터는 금융위원회가 저축의 날을 주관하고 있다.

하지만, 저축의 날의 위상은 외환위기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한 소비 확대가 정부의 최대 정책과제로 떠오르면서 더욱 쪼그라들었다. 그렇다고 50년간 이어져 온 저축의 날 행사를 취소할 수 없어 행사 규모를 최소화해 통상적인 기념식만 하고 있다.

금융권도 시큰둥하긴 마찬가지다. ‘저축의 날’을 맞이해 각종 특판 상품을 쏟아내고 사은행사를 시행하던 예전과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지난해 ‘저축의 날’을 맞아 우리은행, 신한은행, 기업은행, 외환은행, 씨티은행 등이 특판 상품을 출시했지만 ‘저축의 날’ 특수를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낮은 수준의 우대금리를 제공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낮아진 저축률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저축률은 4.5%로 1년 전보다 1.1%포인트 높아졌다. 2009년 이후 4년 만에 상승이다. 1988년 24.7%까지 치솟았던 저축률은 1999년(15%)을 마지막으로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등락을 지속하고 있지만 2010년 이후로 5%대에 머물고 있다. 12~13%인 독일·프랑스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저축률 하락 원인은 정부의 소비 권장= 저축률이 낮은 이유는 경제 성장에 따라 소비성향이 커졌으며, 정부가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소비를 권장하면서 천덕꾸러기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9년 10여 개에 이르던 세금우대저축은 하나로 통합돼 혜택이 줄어든 반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신설하며 소비를 권장했다. 이후로도 장기주택마련저축과 연금저축 등의 소득공제 혜택을 없애거나 축소했으며,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낮추기도 했다. 일부 부유층은 혜택이 없어지자 골드 바나 5만 원권으로 개인 금고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가계 저축률 하락은 소득 정체와 부채 증가로 가계 살림이 어려워진 게 주된 이유다. 가계가 저축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는 말이다. 투자와 소비의 원천인 저축 여력이 떨어진 이면에는 기업과 가계 소득의 양극화가 깔렸다. 가계 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1990년대 12.7%에서 2000년대 6.1%로 낮아졌지만, 기업 소득은 4.4%에서 25.2%로 크게 증가했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달라진 부동산 투자 방식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대표적인 투자수단은 부동산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정부가 금융시장의 신용배분에 직접 개입해 가계대출을 받기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집을 사려면 저축으로 목돈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는 정부 개입이 완화되면서 가계 대출이 급증했다.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우선 집어 구매하고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는 방식이 자리 잡게 됐다.

2008년 말 우리나라는 명목 GDP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78.2%로 OECD 국가 평균(64.4%)을 훌쩍 넘어섰다.

가계 저축률 하락의 또 다른 이유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 부담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사회보험 부담금 증가는 가계 저축률 하락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정부 저축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국민연금은 실제로 가계가 부담하지만, 통계상으로는 정부의 저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업 소득과 사회보험금 증가에 기업과 정부 부문의 저축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총 저축률은 30% 초반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가계 저축률이 하락하는 대신에 기업 저축률이 늘어나 그 차이를 줄이고 있고, 총저축률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여유자금을 투자 용도로 사용하지 고 쌓아두는 것은 미래 성장 동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며, 가계의 소비 여력 감소로 내수를 악화시킬 수 있다.

▲적정한 저축은 미덕= 경제생활의 기본은 ‘저축’이다. 가계 부문에서 저축의 감소는 소득 증가세 둔화와 늘어난 부채 등으로 개인의 저축 여력이 줄어든 탓이 크다. 과거 가계에서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기업투자 재원으로 쓰이며 산업화와 고속성장을 이끌어냈지만, 이제는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세월호 사고 등에 영향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도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 내수 경제를 생각하면 저축만을 강조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적정한 수준의 저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한 금융관계자는 “소비에 영향을 줄 만큼 과도한 저축은 이제 바람직하지 않지만, 저축의 감소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며 “특히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가계 저축이 줄며 개인들의 노후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전문가는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이 있지만, 저축도 미래의 소비를 위한 준비”라며 “좀 더 포괄적인 범위에서 미래를 담보하는 수단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상문 기자 ubot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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