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화 취재4부 사회단체팀장 |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 온 '사이버 사찰'을 조롱하는 대자보 내용이다. 연애하는 남녀간에 있을 수 있는 SNS 뒤지기를 빗대어 대통령의 7시간 부재사건과 수사기관의 사이버 검열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국민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카톡) 검열 논란으로 카톡 이용자들이 대거 썰물처럼 빠져 나가 이민을 가버렸다. 주로 러시아 젊은이가 만들고 독일에 본사를 둔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한 것이다.
다음카카오 대표의 대국민 사과와 감청영장 불응의지를 밝혔지만 국내 3000만명에 가까운 이용자들이 매주 5만~6만명씩 망명길에 나서 대표적인 망명지인 텔레그램의 공식, 비공식 앱을 이용하는 한국인은 약 260여만명이지만 상대가 있는 메신저의 확산 특성상 300만명 이상을 넘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실 온라인 성격상 국경이나 장벽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용자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가입과 탈퇴는 자유로운 현상이며 사이버 검열과 감청은 흉악범죄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첨단 과학수사로서 엄정한 법집행의 수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이버 검열의 문제점과 이 때문에 빚어진 사태의 심각성을 아예 모르거나 모르쇠하고 싶을 것이다. '신상'을 소비하듯이 새로운 메신저 앱(어플리케이션)인 텔레그램으로 간 것이 아니라 카톡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사이버 망명을 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에서 직접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말하자 검찰이 사이버상의 명예훼손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의지를 밝히고 대통령 신변 경호 뿐만 아니라 '심기 경호'까지 하겠다며 휘두르는 칼날이 수십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한 '창조기업' 카톡을 베어버린 것이다.
이에 앞서 세월호 사건당일 대통령의 7시간 부재 의혹 기사를 쓴 일본 언론 기자를 수사하자 일본 정부를 비롯해 미국, 유럽국가들이 일제히 한국의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 퇴보를 비난하고 있으며 국내 외교 전문가 조차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명예를 잃었다'고 할 정도였다. 프랑스 르몽드는 지난 15일 '한국에서 감시받는 언론'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에서 서울 주재 일본인 기자의 기소로 한ㆍ일 양국에 새로운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며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한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터넷 기업과 정보기술(IT) 업계는 '속도'로 흥망성쇠가 결정되듯이 한 번의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대규모의 사이버 난민과 망명객으로 치명타를 입은 기업의 쇠락은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혁명은 뒤처졌지만 대한민국을 모바일 강국으로 이끈 회사 중 하나이며 수조원의 자산가치와 1억6천만명의 가입자, 창조경제의 상징이었던 카카오의 수난은 정부의 책임이라는 의견도 나무랄 수 없는 지경이다.
비록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폐지됐지만 지난 2009년 악성댓글을 단속하겠다며 도입됐던 '제한적 본인 확인제(인터넷 실명제)'로 인해 네이버ㆍ다음에서 구글로 대거 갈아타는 바람에 국내 포털시장의 판도를 뒤흔든 경험이 생생하다.
국가기관의 정당한 법 집행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 검열 수사가 자신도 모르게 이뤄지는 절차적 문제를 지키지 않았고 대화 상대들의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이 문제였다. 이를 피해 사이버 망명이 계속되면 국민들의 정보가 해외 IT기업들에 의해 관리돼 사이버 주권은 공염불이며 국익도 해친다.
텔레그램 개발자인 파벨 두로프는 국내 매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의 '개인의 안위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둘 중 어느 것도 가질 수 없고 가질 자격도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 국민들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으며 당신들의 성공을 빈다”고 말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