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충남도와 천주교계 등에 따르면 도는 교황이 방문한 천주교 성지들을 연결하는 순례길을 스페인의 세계적 순례길을 착안한 일명 '한국의 산티아고길'로 만들기로 했다. 산티아고길은 옛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둔 길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대형 소모형물이 배치돼 있는 등 스페인의 특징이 스며있다.
한국의 자연과 문화를 드러내야 한다는 점을 엿볼 수 있지만 충남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순례길이 지나는 내포신도시와 당진, 서산 등은 급변하는 도시들이기 때문에 자연 상태를 보존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미 역사성이 많이 훼손됐다는 지적도 있다. 순례길 조성과정에서 이런 고민과 함께 역사적 통찰이 분명해야 한다.
지역 천주교계는 종교색을 옅게 해 신자들만의 잔치가 아닌 주민들에게 공감 받을 수 있는 순례길을 주문했다. 당시 시대정신과 역사적 배경, 지리적 특징 등을 담아 천주교 신자가 아닌 선조로서의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게 하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내포지역에서 천주교가 태동한 것은 지리·역사적 특성 때문이다. 내포는 과거 임진왜란 등의 시기에 큰 지각변동을 겪으며 땅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가 올라왔다는 설이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돼 있다. 지금도 땅을 파면 솔뫼 등 주변지역에서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통째로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작지가 늘어났지만 힘있는 자들이 땅을 모두 차지, 열심히 일만하던 사람들은 그들의 소작농이 됐다. 땅으로 인한 빈부격차와 핍박은 강한 시대정신으로 재무장돼 소작농이던 중인과 양인들이 천주교의 큰 별이 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스페인과 다르게 충남의 순례길 주변엔 수덕사나 마애삼존불상 등 불교 명소가 많다는 점도 염두에 둘 사항이다. 내포는 황해도와의 교류도 많았던 지역으로 그 후손들도 많이 살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통일을 위한 순례길이 되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하다.
지역 천주교계 관계자는 “경제적 효과를 유발하려는 순례길은 비판의 대상만 될 것”이라며 “유럽 국가들을 보면 관광의 끝은 퇴폐로 연결돼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역사성을 철저히 부각시켜 차별화된 관광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천주교가 탄생한 지역에 대한 존경과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당국도 이런 배경을 감안했다.도 관계자는 “1차로 천주교 신자 위주의 순례길을 조성하고 2차로 우리나라 역사가 스며들도록 하겠다”며 “제주 올레길 등도 참고해 사람들이 만족할 순례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해미읍성 등 교황이 방문한 도내 성지는 이전보다 방문객이 30% 정도 늘어났다. 도는 이들을 순수 천주교 신자들로 파악했으며, 순례길 조성 이후에는 현재보다 60% 이상 방문객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내포=유희성 기자 jdyhs@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