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 내포본부 부국장 |
어느새 산허리는 울긋불긋 단풍이다. 곳곳에는 흥을 돋우는 축제 한마당이 질펀하다. 역시 가을초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풍경이다. 풍성한 먹을거리와 더불어 흥에 겨워 절로 콧소리가 날법한 축제마당이다 보니 말그대로 함포고복(含哺鼓腹)이 따로 없다. 쉬운 말로 배부르고 등 따습고, 볼거리와 놀거리까지 두루 있으니 어디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함포고복은 흔히들 성군의 대명사인 중국의 요(堯)임금과 관련한 고사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기(史記) 오제본기편(五帝本紀扁)을 보면 천하의 성군인 요임금이 천하를 통치한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의 통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평상복 차림으로 궁을 나섰다. 그리고 어느 거리를 지날 때였다.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게 아닌가.
입아증민(立我烝民-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막비이극(莫匪爾極-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
불식부지(識不知-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순제지측(順帝之則-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요임금은 기분이 좋았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모양이라며 흐뭇한 마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어느새 마을 끝까지 걸어간 요임금은 백발이 무성한 노인을 만난다. 그 노인은 한 입 가득 무언가를 씹으면서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 발로 땅을 구르며 흥겹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게 아닌가.
내용인즉, 일출이작 일입이식(日出而作 日入而息-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경전이식 착정이음(耕田而食 鑿井而飮-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함포고복 고복격양(含哺鼓腹 鼓腹擊壤-내가 배부르고 즐거운데) 제력하유우아재(帝力何有于我哉-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요임금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한가득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백발노인의 고복격양에 과연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며 뿌듯한 마음과 함께 궁으로 되돌아갔다.
백성들이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스스로 일하고 먹고 쉬는 정치가 요임금 시대에 널리 행해졌다는 점에서 새삼 부러울 뿐이다. 정치의 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떤 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면 절로 김이 샌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은 없고 남탓에 혈안이다. 정치가 그렇고 사는 것도 그렇다. 오죽하면 옛말에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을까. 곱씹어 보면 정말 기가 찰 말이다. 남도 아닌 사돈이 땅을 사는데도 배가 아프니 남이 사면 어떨까 싶다.
뉴스는 온통 돼먹지 않은 핑계 정치만 난무한다. 차라리 시시콜콜한 이웃집 아주머니의 잡담이 더 재밌다. 세상사는 이야기가 묻어 있어서다. 그리고 흉금없이 터놓고 울고 웃기며, 즐기는 이야기속에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힐링은 덤이다. 앞서 요임금 시대의 백발노인이 흥얼거리는 고복격양이 따로 없는 모양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체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철저히 가면속의 대화가 이어진다. 소위 말하는 한 자락을 깔아놓고 시작하는 이야기속에서는 서로간의 표정관리만 있을 뿐이다. 진정성은 꼭꼭 숨긴채 말이다. 정치권에서 자주 말하는 '소통'도 같은 맥락이란 점은 지나가는 개도 알정도다. 입만 열면 나는 로맨스지만 상대방은 불륜인데 무슨 소통이 될까 싶다.
'소통'과 '경청'은 국가적 화두가 된지 오래다. 시쳇말로 더없이 멋지고 깔끔한 단어 '소통'과 '경청'이 알맹이만 쏙 빼놓고 겉치레로 이뤄진다면 누란지세(卵之勢ㆍ포개어 놓은 알의 형세라는 뜻으로, 몹시 위험한 형세를 뜻함)가 따로 없다. 상대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방의 소통이라면 콜롬부스의 달걀만도 못하다.
어느새 6ㆍ4지방선거 당선인의 활동시간이 100일을 맞았다. 모두들 초심을 지켜내려고 다짐에 다짐을 하는 모양이다. 100일을 맞은 그들에게 모두가 함포고복할 수 있도록 이 가을을 빌려 멋진 활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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