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를 아시나요]붓과 벼루 씻기 - 또 다른 인격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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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를 아시나요]붓과 벼루 씻기 - 또 다른 인격수양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 승인 2014-10-07 13:53
  • 신문게재 2014-10-08 17면
  •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풍요의 계절에 결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아름이 벌어지면서 떨어지는 알밤이 그렇고 도토리나 상수리가 그렇다. 냄새가 고약하기는 하지만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는 은행잎과 은행 또한 추억을 자극한다.

가을 낙엽과 가을 꽃, 은행잎 등을 책갈피에 꽂아 말려서 문종이를 붙이거나 편지의 한 구석을 장식하던 아름다움도 눈에 아른거린다.

어떤 편지보다도 가을 편지는 애잔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가을 편지는 유행가 가사에도 많이 등장하곤 한다. 붓으로 글씨를 쓸 때 글을 짓거나 공부할 때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글로 연락을 주고받는 편지 등을 주로 쓰곤 하였다.

붓으로 글씨를 다 쓰고 나서 붓이나 벼루 등을 잘 관리하는 일 또한 먹 갈고 글 쓰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겼다. 오히려 붓과 벼루를 잘 씻어 보관하는 일을 마음을 닦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로 여기기도 하였다.

요즈음의 필기구들은 대부분 일회용으로 한번 쓰고 나면 버리기 일쑤지만 붓이나 벼루 등은 붓털이나 벼루 바닥이 닳아서 못쓸 지경이 되기까지 쓰고 또 쓰고 오래도록 쓰곤 하였다. 어느 경우에는 대물림하여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것들도 있다. 붓글씨는 먹을 갈아서 쓰는데, 먹은 그을음을 아교나 녹교 등에 개어 굳혀서 만든다.

먹을 갈아서 쓰게 되면 아교나 녹교 등이 그을음 알갱이를 종이에 달라붙게 만들어서 글씨가 나타나게 된다. 아교나 녹교 등은 접착성분이기 때문에 굳는 성질이 있어서, 글씨를 쓰고 난 뒤에 붓이나 벼루를 잘 씻어내지 않으면 말라붙게 되어 다시 쓰려면 물에 불리기도 어렵고 자칫하면 뻣뻣한 붓털이 부러져서 붓을 망치게 된다.

붓이나 벼루는 깨끗하게 씻어서 잘 말려 두었다가 다시 쓰곤 했는데, 특히 붓의 경우에는 짐승 털로 만든 까닭에 더욱 정성들여 씻어 말리고 붓 끝이 가지런하도록 붓걸이에 걸거나 필통에 꽂아서 보관하였다. 요즈음의 필통들과 달리 붓걸이는 벽에 걸어서 사랑방의 운치를 더하곤 하였다.

필통도 사군자나 12장생의 무늬로 장식하여 선비들의 정취를 더하였다. 붓과 벼루는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구하기도 힘들었으며 값비싼 것이었다. 어느 경우에는 과거 시험을 보러가기 위해 힘들게 구해서 아껴 쓰고 다음에 과거 시험 치룰 형제들을 위해 남겨두기도 하였다. 까마득한 옛일 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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