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특허청 차장 |
이중 독창적인 문자 체계를 갖춘 언어는 40여 종에 불과한데, 대체로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져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시기와 만든 사람을 알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반해 우리의 문자인 한글은 반포일과 만든 사람, 만든 방법까지 유일하게 전해진다. 과학과 철학, 음악과 오행까지 담겨있는 조화로운 문자로, 우리 민족의 창조적 역량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당시엔 우리나라에 특허제도가 없어서 한글이 특허를 받지는 못했지만, 한글은 오늘날 특허법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뛰어난 발명임에 틀림없다.
훈민정음 예의본, 해례본에는 현재의 특허명세서와 유사하게 발명의 목적과 구성, 형식이 제대로 적혀있을 뿐 아니라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독창적인 문자를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발명인 것이다. 특허청에서도 발명자의 사기를 높이고 범 국민적인 발명분위기를 확산하기위해 1992년부터 특허기술상을 제정해 우수한 발명자를 시상하고 있는데, 이 상의 최고상인 대상이 '세종대왕상'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가 “한글은 세계의 알파벳이고,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없으며, 한글 발명은 어느 문자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위대한 성취이자 기념비적인 사건이다”라고 평가한 것이나, 영국의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이 “한글은 가장 독창적이고 훌륭한 음성문자로,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지적 선물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이런 한글의 우수성은 오늘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UN 산하 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는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1990년부터 매년 세계문명퇴치의 날, 문맹을 없애는데 공을 세운 이에게 수여하는 상의 이름도 'King Sejong Literacy Prize '로 정했다.
특히, 2007년에 UN 산하 세계지식재산기구(WIPO)는 제43차 총회에서 183개국 만장일치로 한글을 아홉 번째 국제특허협력조약(PCT) 국제 공개어로 채택했다. 우리 한글로 작성된 특허문서가 번역없이 한글 그대로 전 세계 국민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문자인 한글의 우수성과 세계화를 알리는 사례라 하겠다.
최근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 각국에서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한 국가도 지난해 23개국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렇듯 훌륭한 우리의 한글이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는 한글의 가치와 쓰임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거리는 어느 나라 도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외국어와 외래어 간판이 넘쳐나고 있다. 인터넷과 방송 등에서는 뜻을 알 수 없는 말과 글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디자이너들이 어렵게 개발한 예쁜 한글 글자체는 무단으로 도용되고 모방되기 일쑤다.
더 늦기 전에 이런 현실을 하나하나 바로 잡아야 하고,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지키는 데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한다.
특허청도 일반 국민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권 법문장의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식 표현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는 등 소관 법령에 대한 한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디자인보호법을 개정하여 글자체 디자인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 독창적이고 창작성이 높은 글자체 디자인들이 보호되도록 했다.
법률이나 제도는 국민의 노력을 뒷받침하는 것일 뿐, 우리 한글의 최후 지킴이는 바로 우리 모두일 것이다.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며 우리 모두가 주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 가꿔나가는데 정성을 다해야 한다.
며칠 뒤면 오백예순여덟 돌 한글날이다. 한글을 통해 누구나 배우고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셨던 세종대왕의 고귀한 정신과 업적을 기리면서,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다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소중한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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