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5일 여의도 당사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정감사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일부 종편 채널에선 그를 '2PM'(이총리)이란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2PM은 이완구의 '이'와 '총리'를 칭하는 'Prime Minister'의 합성어로 원래는 인기그룹의 이름이다.
그의 몸값이 '상한가'에 달하는 배경에는 세월호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야권의 격렬한 공격을 유연하게 방어했다는 '공로'가 상당 부분 인정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세월호 유족들을 만난 뒤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감성적 카리스마가 빛을 발했다는 게 국회 주변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어, 사실상 협상의 '적장'인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가 지난 2일 사퇴를 하자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같은 날 국회의원 세비 인상안에 대해, “여당의원들을 상대로 세비를 동결해야 한다”는 소신의 정치 멘트를 던져 세비 인사에 대한 세간의 논란을 단박에 잘라 버렸다.
앞서 지난달 26일에는 새누리당의 '단독국회'시도가 무산된 직후 긴급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 사퇴를 하겠다는 강수를 두며 국회 안팎의 세월호법 처리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국회 환경'에 충청권 총리설과 박근혜 정부들어 '충청권 장관 전무'등의 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이 원내대표를 둘러싼 이런 저런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단지 최근의 원내대표 행보만을 갖고 이 원내대표의 큰 정치를 읽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 이력을 보면 큰 정치를 하겠다던 대목이 여러 지점에서 발견된다.
이 원내대표는 2009년 12월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반대하면서 충남지사직을 사퇴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수용하지 않겠다며 지사직을 던진 것이다.
혈액암 일종인 '다발성골수종' 투병을 이겨낸 그는 지난해 4·24재보선에서 부여·청양에서 3선 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는 선거 당시 유세에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1988년 13대 총선에서 세운 80.99%를 깨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단순한 당선이 아니라 압도적인 득표로 충청권 맹주로 자리잡겠다는 점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 원내대표는 성균관대 3학년 때 행정고시(15회)에 합격한 뒤 경찰 간부로 승승장구했다. 최연소 경찰서장과 최연소 경무관, 최연소 충남·충북 경찰청장 등을 지냈다.
그가 갈길은 아직 멀다. 그리고 분위기도 숙성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말 청와대 개각설과 맞물려 2017년 대선을 염두에 둔 충청 민심을 '입도선매'할 카드로 청와대와 여권이 이 원내대표를 택할 가능성은 상당하다는 게 국회와 청와대 주변의 분석이다.
서울=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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