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권 배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
“기사님은 요즘 행복하십니까?”
그날은 오랜만에 택시를 타고 지인과의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이었다. 택시기사의 표정이 심드렁해 보이기에 나도 모르게 해도 되는 말인지, 해서는 안 되는 말인지 헷갈리는 말을 묻고야 말았다.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택시기사의 표정이 묘해졌다. 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그 질문의 답이 있기나 한 것인지 스스로 궁금해진 표정이었다. 그럴만했다. 내 질문은 이 계절에도 이 시절에도 맞지 않는 것인 듯했다. 그래도 나는 굳이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물어보았다.
“기사님은 요즘 행복하십니까?”
행복이라니, 내가 던진 말임에도 괜히 낯 뜨겁고 낯설었다. 어느새 내 인생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두 번을 연달아 발음하기엔 왠지 민망한 것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은 당사자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창 밖으로는 며칠째 흐린 하늘이 마뜩찮은 표정으로 애먼 가로수만 흔들고 있었고 이제 가을이라 노란 은행잎이 오소소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해도 되는 말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괜히 민망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는데 마음이 섭섭해지려는 때에 내 생각을 가로막으며 택시기사는 나에게 되물었다.
“그럼 손님은 행복하십니까?”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행복이라는 말을 들은 지도 오래되었거니와, 나는 마땅한 대답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할 때면 으레 기대하는 대답을 머릿속에 그리기도 하는 법인데, 나에게는 그런 것도 없이 무턱대고 한 질문이라 혼란스러웠다. 행복이라는 것이 너무 낯설어져서 별 변명 같은 대답도 못하고 이, 그, 저 따위의 말을 주워섬기려 할 때쯤 기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주말만 되면 행복합니다. 주말엔 자전거를 타거든요. 그걸 할 때만 행복한 것 같네요. 언제나 행복하긴 힘든 세상 아닙니까?”
언제나 행복하긴 힘든 세상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계절이나 시절의 탓이 아니라 사는 것이 꼭 그랬다. 어느 시대 그 누구의 삶이 언제나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유 없이 무기력하던 나의 마음이 풀어졌다. 나는 해도 되는 말도,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아닌 꼭 해야 하는 질문을 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을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기사의 말에 맞장구치며 그렇다고 했고 얼마 안 가 택시에서 내렸다. 길가에 줄지어 있는 은행나무 밑에는 은행잎 말고도 구릿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알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 알들을 하나하나 피해 걷다가 이내 그것도 그만두고 그저 걷기만 했다. 발밑에 느껴지는 물컹물컹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불쾌 없이는 유쾌함도 없는 것이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그럭저럭 기분이 나아졌다.
언제나 행복하긴 힘든 세상이다. 발밑에 밟히는 은행의 냄새에 코를 찡그릴 수도, 미끄러져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털고 일어서면 그만인 세상이 아니었던가.
이번 가을은 참 수상한 계절이다. 이렇게 시끄러운 가을이 불어 닥치는 동안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는 것 같은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것이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기에 사람들은 쉽게 상처를 받고 삶에 싫증내기도 하는 것일 게다. 나도 계절이 계절인지라, 아니, 애먼 계절 탓을 하며 삶에다 대고 욕지거리를 풀고 싶었다. 수상한 것은 계절이 아니라 내 마음 아니었던가.
하수상한 시절이다. 풀리지 않는 의혹은 많고 하나같이 안 좋은 소식들만이 현실의 공간을 메우고 있다. 그렇다고 삶을 유기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웅크리고 한 두 계절을 보내면 좋은 시절이 오리라. 언제나 불행하지만은 않은 세상이 아니었던가. 나도 주말에 자전거나 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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