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을에 꾸는 꿈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가을에 꾸는 꿈

정문권 배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 승인 2014-10-05 13:25
  • 신문게재 2014-10-06 17면
  • 정문권 배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정문권 배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정문권 배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정문권 배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나에게는 남에게 말하지 않는 버릇이 하나 있다. 상황에 잘 맞지 않는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꼭 해야 하는 말, 그냥 해도 되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면, 나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래도 나름 나이가 들면서 꼭 해야 하는 말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해서는 안 되는 말은 물론이고, 해도 되는 말도 가급적 하지 않고 지내려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우수수 지는 은행잎을 보고는 감상적인 기분이 되어서인지 그런 질문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기사님은 요즘 행복하십니까?”

그날은 오랜만에 택시를 타고 지인과의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이었다. 택시기사의 표정이 심드렁해 보이기에 나도 모르게 해도 되는 말인지, 해서는 안 되는 말인지 헷갈리는 말을 묻고야 말았다.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택시기사의 표정이 묘해졌다. 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그 질문의 답이 있기나 한 것인지 스스로 궁금해진 표정이었다. 그럴만했다. 내 질문은 이 계절에도 이 시절에도 맞지 않는 것인 듯했다. 그래도 나는 굳이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물어보았다.

“기사님은 요즘 행복하십니까?”

행복이라니, 내가 던진 말임에도 괜히 낯 뜨겁고 낯설었다. 어느새 내 인생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두 번을 연달아 발음하기엔 왠지 민망한 것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은 당사자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창 밖으로는 며칠째 흐린 하늘이 마뜩찮은 표정으로 애먼 가로수만 흔들고 있었고 이제 가을이라 노란 은행잎이 오소소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해도 되는 말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괜히 민망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는데 마음이 섭섭해지려는 때에 내 생각을 가로막으며 택시기사는 나에게 되물었다.

“그럼 손님은 행복하십니까?”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행복이라는 말을 들은 지도 오래되었거니와, 나는 마땅한 대답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할 때면 으레 기대하는 대답을 머릿속에 그리기도 하는 법인데, 나에게는 그런 것도 없이 무턱대고 한 질문이라 혼란스러웠다. 행복이라는 것이 너무 낯설어져서 별 변명 같은 대답도 못하고 이, 그, 저 따위의 말을 주워섬기려 할 때쯤 기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주말만 되면 행복합니다. 주말엔 자전거를 타거든요. 그걸 할 때만 행복한 것 같네요. 언제나 행복하긴 힘든 세상 아닙니까?”

언제나 행복하긴 힘든 세상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계절이나 시절의 탓이 아니라 사는 것이 꼭 그랬다. 어느 시대 그 누구의 삶이 언제나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유 없이 무기력하던 나의 마음이 풀어졌다. 나는 해도 되는 말도,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아닌 꼭 해야 하는 질문을 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을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기사의 말에 맞장구치며 그렇다고 했고 얼마 안 가 택시에서 내렸다. 길가에 줄지어 있는 은행나무 밑에는 은행잎 말고도 구릿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알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 알들을 하나하나 피해 걷다가 이내 그것도 그만두고 그저 걷기만 했다. 발밑에 느껴지는 물컹물컹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불쾌 없이는 유쾌함도 없는 것이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그럭저럭 기분이 나아졌다.

언제나 행복하긴 힘든 세상이다. 발밑에 밟히는 은행의 냄새에 코를 찡그릴 수도, 미끄러져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털고 일어서면 그만인 세상이 아니었던가.

이번 가을은 참 수상한 계절이다. 이렇게 시끄러운 가을이 불어 닥치는 동안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는 것 같은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것이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기에 사람들은 쉽게 상처를 받고 삶에 싫증내기도 하는 것일 게다. 나도 계절이 계절인지라, 아니, 애먼 계절 탓을 하며 삶에다 대고 욕지거리를 풀고 싶었다. 수상한 것은 계절이 아니라 내 마음 아니었던가.

하수상한 시절이다. 풀리지 않는 의혹은 많고 하나같이 안 좋은 소식들만이 현실의 공간을 메우고 있다. 그렇다고 삶을 유기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웅크리고 한 두 계절을 보내면 좋은 시절이 오리라. 언제나 불행하지만은 않은 세상이 아니었던가. 나도 주말에 자전거나 타 봐야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4.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5.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1.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2.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3.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4.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5.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