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한밭의 내와 물고기 할아버지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문화초대석]한밭의 내와 물고기 할아버지

서석규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4-10-05 13:00
  • 신문게재 2014-10-06 16면
  • 서석규 문화칼럼니스트서석규 문화칼럼니스트
▲서석규 문화칼럼니스트
▲서석규 문화칼럼니스트
민물고기 박사로 통하는 최기철 교수(1910~2002)를 만나면 곧잘 '대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릴 때 가오리에 살면서 신흥국민학교에 다녔다. 알바우 모롱이 바윗돌들이 불쑥불쑥 솟은 내에서 고기 잡던 이야기를 했다. 나도 이모 한 분이 그 인근에서 살고 있어서 이종들과 고기 잡던 기억을 더듬었다.

40년대 말 대흥다리 근처에서 피라미 낚시하던 중학생 때의 내 즐거운 '대전시절 추억'도 이야기상위에 오르곤 했다. 그 냇가에서 놀던 시기가 최박사와 나 사이에 23년의 격차가 있었건만 한밭의 교외 풍경은 큰 차이가 없었다. 깨끗한 모래톱이 있었고 냇물은 수정같이 맑았고 물고기가 흔했다.

그는 서울대 교수로 정년을 마친 뒤 10년 동안 오랜 꿈을 실현하고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우리 민물고기를 조사했다. 물줄기를 따라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찾아다녔다.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직접 조사하고 확인하고 겨울에는 표본과 옛 기록을 살피면서 연구했다.

피땀 어린 조사 연구의 결실은 모두 7권의 두툼한 책 '한국의 자연-물고기편'으로 완성되었다. 방대한 이 저작은 그를 '민물고기 할아버지' '한국 민물고기 연구의 태두' 자리에 올려놓았다. 물이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직접 찾아다니며 완성한 이 책을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 버금가는 겨레의 보물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황무지에 가까웠던 한국의 민물고기 연구는 그가 민물고기박사(서울대) 제1호로 나서면서 새로운 맥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낼 때 대전은 넓은 밭이 펼쳐 있는 '한밭'이었다고 했다. 도시 이름을 두고 '대전(大田)이다' '태전(太田)이다' 하면서 논의할 때 최 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왜 한자를 끌어들여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밭이란 이름이 얼마나 좋은가? 내 자랄 때는 대전보다 한밭이 더 입에 밴 이름'이었다면서 '한밭'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민물고기 연구의 바탕을 일구고 나서 위기에 처해있던 우리 민물고기 보호와 보존사업, 그리고 청소년교육 활동에 뛰어 들었다. 사단법인 한국 민물고기보존협회를 결성하고 팔을 걷고 나섰다. 나는 '함께 일하자!' '나 좀 도와 줘!'하는 최박사의 반 강요를 거역하지 못하고 거기 협회의 임원으로 끼었다. 그가 세상을 뜨자 '회장 유고 때는 최 연장 이사가 승계한다.'는 정관 때문에 꼼짝 못하고 3년 간 협회 간판을 지켰다. 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한밭의 냇물인 '산내'가 그를 민물고기 할아버지의 길로 이끌었고, 좋아하던 버드내 한 지류 끝 산언덕이 그의 영원한 쉼터가 되었다. 버드내는 멸종위기 고유어종인 미호종개가 SOS를 보내고 있는 곳이다.

민물고기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떠날 수 없다. 바다를 거치지 않으면 다른 강으로 옮겨갈 수도 없다. 바다로 가면 죽는다는 걸 아는지, 민물고기는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놀려 상류 쪽을 향해 헤엄친다. 장마로 거센 흙탕물이 밀려오면 강가 풀밭에서 풀잎을 꼭 물고 버틴다. 같은 종이라 해도 사는 강줄기에 따라 유전자가 다르다.

경북 강원 경기도에는 자기 고장 민물고기를 지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물속 세계와 물고기의 생태를 이해하고 여가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민물고기 생태학습관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는 백여 곳의 이런 관찰시설(수족관 등)이 있다. 금강 수계에 이런 시설이 꼭 있어야겠다며 각계에 호소하여 정부예산이 편성된 적이 있었으나 막상 당해 지자체는 '전액 국고가 아니면 못하겠다'며 예산을 반납하여 무산된 일이 있었다. 10년 전 일이다.

한밭의 물은 모두 금남정맥 신령스런 산줄기가 힘을 모은 신비한 영산에서 발원하고 있다. 대둔산에서 갑내(갑천)가, 금성산과 오대산에서 버드내(유등천)가, 만인산에서 산내(대전천)가 나란히 한밭의 땅을 기름지게 적시고 한밭의 북쪽에서 서로 손잡고 금강으로 합류한다.

최기철 박사가 염원하던 어린이들이 물고기를 쫓으며 툼벙거리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강변 쉼터와 강변문화와 물고기를 지키는 체험관이 한밭에 들어선다면…. 그의 12주기를 맞으며 '접었던 꿈'이 잠시 눈앞에 어른거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4.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5.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1.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2.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3.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4.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5.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