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에서 소방관들이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독자 송영훈 제공 |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에서 본 소방관들은 꼭 그랬다.
대전 동부소방서 이봉훈 진압3팀장은 지난달 30일 오후 9시 집에서 쉬던 중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으로 달려나왔다.
그가 마주한 타이어공장 화재는 지난 24년간 소방관으로 겪은 현장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가연성 가스가 한번에 폭발해 만들어지는 버섯모양 연기(파이어볼)까지 나타났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 팀장은 서둘러 방화복으로 갈아입고 불붙은 공장 앞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앞서 도착한 선발대 동료들이 현장에서 나와 교대할 때 들어가야 한다.
드디어 동료 소방관들이 건물에서 나왔다. 살짝 비틀대는듯 모습이 공장 실내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케했다. 공기흡입기를 착용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물류창고 2층에 진격했다.
타이어가 내뿜는 검은 연기 넘어 붉은 화염이 혓바닥처럼 남실댔다. 단단하던 철제빔도 화염 앞에서 끊어지고 붉게 달아올라 휘어져 있었다.
이 팀장은 불 붙은 제1물류창고과 이어진 제2물류창고에서 화염이 넘어오지 않도록 저지하는게 임무였다. 이 팀장 옆으로 동료 소방관 20여명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소방수를 화염을 향해 쏟아냈다.
화염은 50m가량 떨어져 소방수가 직접 닿지 않았고, 복사열때문에 소방관들이 있는 물류창고 2층 내부에 불이 붙고 있었다.
바람까지 도와주지 않아 바람은 화염을 몰아 소방관 뒤 생산공장 쪽으로 자꾸 넘어왔다. 이 팀장은 과연 화염 혓바닥을 막아낼 수 있을까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때 동부소방서 정광호(36) 대원도 화염 앞에 섰다. 소방관 생활 1년만에 겪은 대형 화재 앞에서 무릎이 떨렸지만, 소방호수를 끝까지 잡았다.
정 대원 눈에 보인 불꽃은 쇠물이 펄펄 끓는 붉은 용광로 같았다. 살아 움직이는듯 보였고 모든 걸 녹여버렸다.
정 대원 뒤에는 급하게 치운 고무타이어가 쌓여 있었다. 불난 곳도 창고였고, 소방관들이 방어하는 곳도 창고였다.
용광로 불똥이 뒤에 있는 타이어에 닿는 순간 확산은 막을 수 없게 된다. 비닐하우스처럼 연결된 공장 전체가 재더미가 되느냐는 여기서 결정될 일이었다. 정씨는 소방호수를 끝까지 놓치 않았다.
그때 손창구 동부서 진압대장은 불꽃이 넘어갈 길목이 어딘지를 찾았다. 사각 장기판 형태의 한타 공장 중 가장 구석진 차(車)의 위치에서 불이 붙었지만, 길목을 뚫리면 불 붙은 차(車)는 곧장 생산공장으로 치닫을 터였다.
손 대장은 불꽃이 확산될 때 지날 길목인 제2물류창고와 상차동에 소방관들을 집중시켰다. 창문 없이 판넬로 덮인 구조물에서 불을 끌 수 있는 건 소방대원들의 손밖에 없었다.
그 시간 전직원 소집령을 들은 대전소방본부 소방대원들은 택시를 타고 승용차를 몰고 또 오토바이를 몰고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인 대원이 439명이었고, 민간인 의무소방대원 100명이 찾아와 힘을 더했다.
확산 저지에 성공한 소방대원들은 오후 11시쯤 화마의 기세를 꺾는데 성공하고 날이 밝은 오전 8시 30분에서야 완진을 선언할 수 있었다. 땀으로 목욕한 장비를 푸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탈진한 얼굴에는 안도감이 묻어있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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