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 취재2부 지방교열팀장 |
김부선은 배우다. 그녀는 아름답고 섹시하다. 매력있는 여배우 김부선이 일을 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비리의혹 제기로 아파트난방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김부선은 “10년동안 난방비 비리를 바로잡으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며 “내가 나서서라도 난방비 비리를 밝히는데 앞장서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언론과 방송도 아파트난방비의 문제점을 보도하고 있고 경찰 역시 난방비 비리를 수사하는 중이다. 아파트관리비 비리가 종종 보도되긴 했지만 김부선으로 인해 사회 공론화된 것이다.
흔히 연예인이 이슈가 되는 경우는 열애설 내지는 사건사고 등 가십성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서민들의 삶과는 다른, 부와 명예를 누리는 여배우가 '고작' 난방비 문제로 이웃과 드잡이하면서 사회부조리를 고발하겠다니! 오죽하면 가수 방미가 제발 아무데나 나서지 말라며 훈계조의 '말씀'을 내뱉을까.
이번 일을 계기로 한 여자의 작은 '소동'이 부조리한 사회시스템을 개선하는 놀라운 힘을 우리는 알게 됐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에린 브로코비치도 끈질긴 노력과 결단력으로 정의롭지 못한 거대기업의 비리를 바로잡은 경우다. 그녀는 주민들의 식수가 한 기업체의 독극물로 오염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장폐수가 마구 방출돼 주민들은 습관적인 유산과 피부병, 암 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녀는 길고도 힘겨운 4년의 소송에서 이겨 2억5000만달러라는 사상 유례없는 피해배상금을 끌어냈다.
거대권력과의 싸움은 20대 80으로 상징되는 불평등이 심화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밀양 송전탑'과 'KTX 여승무원'은 다윗과 골리앗 싸움으로 비유된다. 그래도 밀양 노인들과 KTX 여승무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가 아닌, 자본의 운동에 따라 장악되고 있는 생존의 터전을 지켜내려 하고 있다. 시민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가 자본의 힘 앞에서 짓밟혀도 웃으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의지를 내보인다.
시민운동, 사회운동은 권력과 권위에 대한 저항의 수준과 양상이 다양하다. 저항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그 자체를 구축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시적으론 봉건적 구체제를 붕괴한 프랑스 혁명이나 부패한 관리의 학정을 고발한 동학 혁명 등이 존재한다. 이제 학생운동, 반전ㆍ반핵ㆍ평화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의 활성화는 보편적 사회현상이 됐다. 시민조직은 국가권력, 시장권력의 감시와 견제에서 태동했다. 더불어 김부선과 미국 시민권운동에 불을 당긴 로자 파크스처럼 한 개인이 자기권리를 지키려는 시민의 출현은 사회진보의 상징으로 내세울만 하다.
서양철학의 거목, 칸트는 여성을 평가하는데 참 인색했다. 그는 여성이 세상사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적당치가 않다고 했다. 여성이 고달프게 학습하고 높은 경지에 이르려 한다면 여성의 아름다움은 죽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김부선은 성적 욕망에 몸이 달아오른 분식집 여주인으로 나온다. 자신의 깊게 파인 옷 속에 있는 가슴에 순진한 학생 권상우의 손을 거침없이 가져가는 김부선의 연기는 정말 리얼했다. 그 영화로 인해 김부선이라는 여배우가 궁금해졌었다. 과연 그녀는 크리스털 같이 깨지기 쉽고 화려하기만 한 배우가 아니었다. 야성적이고 모성애가 강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씩씩한 여성이었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녀로 인해 아파트관리비 내역서를 꼼꼼히 살펴 보게 됐다. 김부선은 예뻤다. 칸트씨는 경악할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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