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권 목원대 총장 |
우리는 자식이 상전(上典)인 시대에 살고 있다. 공부 안 하는 자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스스로 알아서 척척 공부 잘하는 자식이라 해서 별반 다를 게 없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학생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공부인데도 그걸 좀 잘했다고 해서 마치 뭔가 특별한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위세를 떤다. 아니꼬운 마음이 들다가도 혹시 빗나가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다. 공부 잘 하는 것 말고 다른 면에서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어도 그저 공부 하나 잘하는 것만으로 효자 대우를 해줘야 한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나 사회에서 무슨 짓을 할지는 뻔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아이들이 선생님의 훈계 따위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일 것 같지는 않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온갖 사회적 병폐의 원인을 진단하여, 사람들은 인성교육의 부재 때문이라 결론짓는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 동안 제쳐두었던 '고리타분한' 것들을 꺼내들고 인성교육이란 것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학교 혼자 떠맡기엔 너무나 저만치 가버린 일이다.
흔히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 시대는 또한 기사도(騎士道)가 꽃을 피운 시대이기도 하다. 기사도란 중무장 기병이었던 기사들의 행동규범이었다. 그 규범 중에는 약자와 여성과 가난한 자를 보호할 것, 정당한 명분을 위해서만 칼을 뽑을 것, 주군을 위해서라면 모든 위험을 감수할 것, 잔인하거나 비겁하지 말고 패배자들을 모욕하지 말 것, 사랑하는 여인의 명예를 위해 전쟁에 나가거나 모험으로 이름을 날릴 것, 모든 이에게 관대할 것 등, 주로 오늘 날 왕따니 학대니 하는 비열한 짓들과는 반대되는 것들이다. 요즘도 여성이 물건을 떨어뜨리면 남성이 그걸 대신 주워주는 일이 있는데, 그 연원(淵源)을 따져보면 결국 기사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중세의 군인이었던 기사들이 이상(理想)에 가까운 이 어려운 규범들을 자랑스럽게 실천하는 인재가 된 것이 단지 공부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곱 살에 다른 성(城)에 가서 귀부인의 사환노릇을 하면서 예의와 범절을 익혔고, 십사세가 되면 기사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니며 기사가 되기에 충분한 용기와 충성심을 입증하는 등의 실천적 교육을 거친 후, 스물한 살에야 비로소 기사가 될 수 있었다. 기사가 되면, 영주는 그에게 상당한 봉지(封地)를 주었고, 그 예우가 대단하였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는 도저히 이루기 힘든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기사도를 체득한 기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날이라고 해서 실천적 인성교육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먼저, 공부 하나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현재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둘째, 책 공부만으로 모든 공부가 다 끝난 것으로 간주하는 학습관을 바꾸고, 학습에 실천적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정부든 기업이든, 최종 수요자가 성적만으로 사람을 뽑지 말고, 그들이 학생시절에 어떤 활동을 했고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고 뽑아야 한다. 최근 일부 기업들이 소위 스펙이나 학점, 심지어는 학벌도 무시하고 예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사람을 뽑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어떻게 하면 학문탐구에 실천적 요소를 더하여 이론과 현실에 능하면서도 사람다운 인재를 키울 것인가 하는 것은 대학의 새로운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