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실천적 교육의 필요성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목요세평]실천적 교육의 필요성

박노권 목원대 총장

  • 승인 2014-10-01 13:59
  • 신문게재 2014-10-02 16면
  • 박노권 목원대 총장박노권 목원대 총장
▲박노권 목원대 총장
▲박노권 목원대 총장
모처럼 만난 친구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아들 녀석이 전날 밤 아주 늦게 귀가하더니 아침에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일어나질 않아서 한 바탕 소동을 벌였단다. 학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공부는 안 하더라도 일단 시간 맞춰 학교 가는 것인데, 그게 매번 잘 되지 않아서 때로는 달래보기도 하였고, 더러는 손찌검도 해 보았지만, 그 버릇이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단다. 다 때가 되면 철이 드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하긴 했지만, 남의 일 같지 않다. 그것은 거의 모든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식이 상전(上典)인 시대에 살고 있다. 공부 안 하는 자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스스로 알아서 척척 공부 잘하는 자식이라 해서 별반 다를 게 없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학생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공부인데도 그걸 좀 잘했다고 해서 마치 뭔가 특별한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위세를 떤다. 아니꼬운 마음이 들다가도 혹시 빗나가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다. 공부 잘 하는 것 말고 다른 면에서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어도 그저 공부 하나 잘하는 것만으로 효자 대우를 해줘야 한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나 사회에서 무슨 짓을 할지는 뻔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아이들이 선생님의 훈계 따위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일 것 같지는 않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온갖 사회적 병폐의 원인을 진단하여, 사람들은 인성교육의 부재 때문이라 결론짓는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 동안 제쳐두었던 '고리타분한' 것들을 꺼내들고 인성교육이란 것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학교 혼자 떠맡기엔 너무나 저만치 가버린 일이다.

흔히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 시대는 또한 기사도(騎士道)가 꽃을 피운 시대이기도 하다. 기사도란 중무장 기병이었던 기사들의 행동규범이었다. 그 규범 중에는 약자와 여성과 가난한 자를 보호할 것, 정당한 명분을 위해서만 칼을 뽑을 것, 주군을 위해서라면 모든 위험을 감수할 것, 잔인하거나 비겁하지 말고 패배자들을 모욕하지 말 것, 사랑하는 여인의 명예를 위해 전쟁에 나가거나 모험으로 이름을 날릴 것, 모든 이에게 관대할 것 등, 주로 오늘 날 왕따니 학대니 하는 비열한 짓들과는 반대되는 것들이다. 요즘도 여성이 물건을 떨어뜨리면 남성이 그걸 대신 주워주는 일이 있는데, 그 연원(淵源)을 따져보면 결국 기사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중세의 군인이었던 기사들이 이상(理想)에 가까운 이 어려운 규범들을 자랑스럽게 실천하는 인재가 된 것이 단지 공부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곱 살에 다른 성(城)에 가서 귀부인의 사환노릇을 하면서 예의와 범절을 익혔고, 십사세가 되면 기사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니며 기사가 되기에 충분한 용기와 충성심을 입증하는 등의 실천적 교육을 거친 후, 스물한 살에야 비로소 기사가 될 수 있었다. 기사가 되면, 영주는 그에게 상당한 봉지(封地)를 주었고, 그 예우가 대단하였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는 도저히 이루기 힘든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기사도를 체득한 기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날이라고 해서 실천적 인성교육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먼저, 공부 하나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현재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둘째, 책 공부만으로 모든 공부가 다 끝난 것으로 간주하는 학습관을 바꾸고, 학습에 실천적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정부든 기업이든, 최종 수요자가 성적만으로 사람을 뽑지 말고, 그들이 학생시절에 어떤 활동을 했고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고 뽑아야 한다. 최근 일부 기업들이 소위 스펙이나 학점, 심지어는 학벌도 무시하고 예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사람을 뽑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어떻게 하면 학문탐구에 실천적 요소를 더하여 이론과 현실에 능하면서도 사람다운 인재를 키울 것인가 하는 것은 대학의 새로운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4.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5.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1.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2.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3.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4.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5.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