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부글부글과 퐁퐁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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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부글부글과 퐁퐁퐁 사이

정미랑 아산 모산초 교사

  • 승인 2014-09-30 14:10
  • 신문게재 2014-10-01 16면
  • 정미랑 아산 모산초 교사정미랑 아산 모산초 교사
▲정미랑 아산 모산초 교사
▲정미랑 아산 모산초 교사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는 사랑 앞에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고 간다고 하는데, 나는 아이들 앞에 부글부글과 퐁퐁퐁 사이를 오고 갑니다. 이게 무슨 시덥잖은 소리냐고요? 글쎄 우리 반 이야기랍니다.

첫 국어시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말에 대해 알아보기'라는 학습주제를 가지고 공부하는 시간이었지요. '꼬부랑 할머니' 글을 읽는데 '꼬부랑꼬부랑'이라는 말이 나오자 키득 키득. '꼬부랑꼬부랑'이 다시 나오자 푸하하하. 이유를 물어본즉 “꼬부랑이 재미있어요. 선생님 생각이 나요. 꼬부랑꼬부랑~ 정미랑정미랑~ 하하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오로지 해맑지 못한 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저였지요. '참 복도 많지? 우째 해를 거르지 않고 개성 넘치는 아이들을 만날꼬? 그래, 올해 우리 반 슬로건은 다복다복이다. 여기저기 탐스럽게 소복한 모양을 나타내는 우리말. 다복다복. 서로에게 복(福)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다복. 참~ 복도 많은 나, 다복' 교실 한 편에 자리 잡은 우리 반 타이틀 '다복다복 웃음반.' 아이들에게는 비밀인 나의 자조 섞인 소심한 복수였다.

매 수업시간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면 시원할 테지만 교사의 체면이 있는지라 마음속으로 '열(熱)내지 말고 열(十)을 세자'를 되새기며 근엄한 표정으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만 진지할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장난기가 심하고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이니 아침 명상을 강화하여 마음도 차분하게 하고, 집중력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명상 시간도 10초부터 시작하고 스토리텔링도 접목해 가며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보았다. 해마다 하는 명상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디고 아이들도 힘들어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학시간이었다. 분류하기 문제가 나왔다. 잠수함 한 척에 자리는 3개, 사람은 모두 6명, 저 깊은 바다 속으로 여행을 떠나려면 잠수함 2척에 3명씩 나누어 타야 해요. 어떻게 나누어 타면 좋을까요? 이런 문제에 보통 아이들의 답은 “여자랑 남자로 나눠요, 모자 쓴 사람과 안 쓴 사람이요.” 이렇게 말하기 마련인데 우리 반은 역시 달랐다.

“가위바위보를 해요. 머리 모양으로 나눠요.”

나도 체념한 듯 “그래 너희들이 말하고 싶은 거 다 말해봐.”

“제비뽑기를 해요. 포테토칩으로 해요, 마술빼기요, 별모양으로 나눠요.”

“여기 그림을 보면 ㄱ,ㄴ을 뒤집은 모양으로 보이거든요. 이렇게 2팀으로 나눌 수 있어요.”

“또 있어요. 또 있어. 사랑의 작대기요. 우 뚜. 뚜루뚜. 뚜. 뚜루뚜”

“우와 대단한데. 너희들은 어쩌면 생각이 샘물처럼 나오니? 생각이 정말 야들야들하다.”

“야들야들이요? 큭큭큭. 선생님이 그냥 말하라고 하니까 생각이 퐁퐁퐁 나와요.”

“퐁퐁퐁~, 야들야들~ 선생님 정말 웃겨요. 선생님 다른 것도 해봐요. 재미있어요.”

“그래 생각을 야들야들하게 하며 퐁퐁퐁 마구 마구 꺼내보자.”

이때부터 우리는 '생각이 퐁퐁퐁, 생각이 야들야들'이라는 주제로 교과서에는 없는 우리들만의 창의놀이 시간을 갖게 되었다. 주제는 최대한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교실'이라는 주제보다는 '우당탕탕', '콕콕콕콕' 등 흉내 내는 말을 제시했고, 아이들 스스로 주제를 정해보도록 했다.

주제가 새롭고 스스로 생각해 내서 그런지 역할놀이를 할 때도 소품을 이용하겠다고 하고 감독, 조명, 분위기 띄우는 사람 등 여러 가지 인물을 정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창의놀이 시간만큼은 삼천포로 빠지는 친구 없이 목적지를 향해 순항하였다. 물론 가끔은 파도도 만나기도 하고, 방해하는 몇 몇 갈매기 때문에 소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오늘은 가을을 맞이하여 황병기의 가야금곡 가을과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을 야심차게 준비했다. 비발디의 가을이 나오기 1분도 채 되지 않아 '이거 지하철 음악'이라고 왈가왈부하는 우리 반.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아이들 말대로 퐁퐁퐁일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다복이들의 창의 샘물을 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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