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천원 인상을 둘러싸고 나라가 온통 찬반논쟁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감세 정책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일명 '부자 할아버지법'으로 불리는 법안이 그것이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손주 교육비로 쓰도록 1억 원을 물려줄 때 증여세를 면제시켜주자는 것이다. 경기부양과 가계 교육비 부담 경감이라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부자 감세' 화살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증여받은 날부터 4년 이내에 전액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재산상속을 합법화하는 방법으로 쓰일 여지가 충분하다.
서민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은 불을 보듯 뻔하다. 1억 원을 학비에 쓰라고 선뜻 내줄 수 있는 조부모와 금연 후 담배값을 61년 모아야 1억 원을 손에 쥘 수 있는 서민들의 간극이야 말로 현재 대한민국의 단면이다. 손주 교육비로 1억 원을 쓸 수 있는 조부모가 얼마나 되느냐도 논란거리다. 노인 사이의 빈부격차가 OECD국 중 최악인 우리 실정에 비춰볼 때 빈곤 노인층의 상대적 박탈감도 간과할 수 없다. 법안의 모델이 되는 일본의 경우 노인층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복지혜택도 잘 돼 있지만, 그와 상황이 다른 우리의 경우 소수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끊으려던 담배를 다시 꺼내들고 싶은 이들이 어디 한 둘일까.
아이가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선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닌 세상이 될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려되는 교육의 빈부격차가 '법적'으로 대물림되고 '그들만'의 또 다른 감세 정책이 되는 건 아닌지.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는 서민 신세가 서럽다.
김은주ㆍ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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