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배재대 입학사정관 |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면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아내는 전업주부로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두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 부모의 심정을 알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이른 아침에 출근했다가 밤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휴일에나 잠깐 같이 지냈기 때문에 육아를 통해서 부모의 심정을 느끼질 못했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젖을 먹다가 밥을 먹기 시작했고, 걸음마를 떼어놓다가 뛰어다니더니 어느 틈엔지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중ㆍ고등학교 시절에는 부모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이 바쁘게 생활하다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내 직장을 잡은 뒤로는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마주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자식은 낳기만 하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남들은 딸을 시집보낼 때 울기도 한다는데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사위가 믿음직스러웠고, 가정을 이룬 뒤에는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견스럽게 여겼다. 결혼 전에는 예쁘장하며 귀엽고 마냥 어려 보이던 딸아이가 어느 날 찾아와서는 아기 엄마가 될 것이라는 귀띔을 해 주었다.
만혼이어서 은근히 걱정도 했었는데 반가운 소식이라고 축하해 주었다. 그 후로는 길을 가다가 둥그런 배를 내민 채 오리걸음을 걷는 여자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은 딸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인가 보다. 이따금 딸아이가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얼굴에 윤기가 사라지고 웃음이 달아난 모습을 보게 되면 뱃속의 아기보다도 사위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산만큼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에는 시집을 보낸 것이 나의 잘못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마침내 출산예정일이 다가와 딸아이가 병원에 입원했다. 두 주간이나 고생하다가 제왕절개수술을 하고 입원실에 누운 모습을 보고서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도 고귀하며 임신과 출산과정이 가혹할 만큼 길고도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원 후에는 아내가 해산바라지하면서 손녀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았다. 딸아이는 아기에게 젖을 먹인 뒤에 등을 쓸어내리면서 트림을 시키고, 잠이 들면 요 위에 누인다. 자다가 깨어나 서럽게 울면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5㎏도 넘는 아기를 두 팔로 안고서 재운다. 다시 잠이 깨어 울기 시작하면 또 젖을 물린다. 이렇게 아기들은 먹고 잠자며 배설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다. 아기엄마는 그 곁에서 꼼짝 못하고 24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수발을 든다. 한밤중에도 제대로 잠을 자질 못하고, 낮 동안도 맘 편히 눈을 붙이지 못한 채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하루 동안에 기저귀를 20개가 넘게 갈아댄다고 하니 산모들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런 일을 지켜보면서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두 아이를 기를 때엔 면 기저귀를 빨아서 채웠는데, 요즈음에는 일회용 종이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다. 육체적인 노동량은 많이 줄었지만 경제적 부담이 커서 가난한 사람들은 기저귀 값 대기도 벅찰 것만 같다.
손녀를 기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늦게나마 부모님의 희생을 엿볼 수 있었다. 어른들이 돌아가신 뒤에는 기일을 맞아 예를 갖추고, 추석명절이면 가족이 성묘를 다녀오면서 덕을 기리는 것도 모두 다 그 은공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들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영원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존재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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