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어느 사회이건 군사제도는 두 개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는 국가안전보장의 위협으로부터 나오는 기능상의 요청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내부의 사회적인 힘, 이데올로기와 제도로부터 생기는 사회적인 요청이다. 그런데 사회적 가치만 반영된 군사제도는 군사적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고, 순수하게 군사적 요청에 의해서만 형성된 군사제도를 사회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도 불가능하다.'
새뮤얼 헌팅턴이 '병사와 국가'에서 제기한 문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요인의 접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것이 전쟁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군 조직의 문제를 푸는 핵심이 될 것이다. 먼저, 우리의 징병제를 보자. 징집자원을 용이하게, 낮은 비용으로 유지하는 장점이 있는 징병제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안보적 요청에 의해 지금껏 지속되어 왔다. 때문에 일반병의 처우 수준은 낮고 생활공간ㆍ인권은 외면되어 왔다.
선진 유럽에서 징병제가 국가주권을 가진 시민이 나라를 지킨다는 민주적 개념과 함께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역사성을 갖는다.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징병제를 채택하며 국가 건설에 기여했다. 왕정으로부터 혁명을 지켜내고자 '모든 시민은 병사여야 하고 모든 병사는 시민이어야 한다'는 기치 아래 징병제가 헌법을 지키는 보루가 됐다. 직업군인이 귀족계급에 도전하는 것이 민주 발전과 동일시되었다. 스웨덴도 시민의 권리, 평등주의 확보 등 민주적 가치발전에 징병제가 큰 기여를 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징병제가 시민권과 결합해 시민의 개념이 군대 속에 자리 잡지 못했고, 국가생존을 위한 체제로만 여겨왔다. 따라서 안보는 개인의 가치보다 최상에 놓였고, 이런 군사상의 요청은 1949년의 징병제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국가주의적 가치, 군사적 요청이 21세기 사회의 민주적 가치와 충돌하며 변화의 임계점까지 도달한 것 같다.
헌팅턴의 말대로 군사적 기능적 요청에 징병과 병사의 모든 인격까지 끼워 넣을 순 없는 시점이다. 입영을 단지 국가안보의 도구가 되는 과정으로 여긴다면 인권과 안전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매년 4만~5만 명이 강등ㆍ영창 등의 징계를 당하고 100여명이 사망하는 현실이다.
21세기 사회에서 병사가 되는 것은 시민권을 키워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군대제도가 군사적 요청에서 사회적 요청의 축으로 이동돼야 한다. 군대조직을 국민의 통제 영역으로 두는 문제는 논의조차 없었지만 민군의 관계가 재설정돼야 한다.
국민적 지지에 의존하지 않는 국민의 군대는 없다. 또 국민적 지지에 의존하는 한 그 군대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윤리규범을 가져야만 한다. 전쟁 중에도 전투와 살인행위를 구분하고 있는데 평시에 인간존중의 규범이 없다면 군의 기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통제가 없다면 외부적 위협에 대응하는 군대가 내부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정부가 병영혁신을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미국은 2차대전이 한창인 1941년 진주만이 습격당한 다음날부터 1945년까지 해외에서 전투 중인 미군 병사 50만 명을 조사했다. 스투퍼 박사가 주도하여 병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떤 대안을 가져야하는지 세 가지 동기에서 출발해 4년간의 조사 끝에 그 결과물을 '아메리칸 솔저'라는 분석 보고서로 담아냈다.
전쟁이 한창인 시기에 조사에 들어간 학자들, 인터뷰한 병사들의 숫자와 비용도 엄청났지만 그런 의지를 가졌다는 정부에 놀라울 따름이다. 미국 군대역사에서 기념비적 조사이고, 그 후 행동과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스투퍼의 진단서와 대안을 우리는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철조망과 바리케이드가 쳐진 고립된 섬의 군대, 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 돼선 안 된다. 군사적 안전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물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그것은 단기간에 될 문제도 아니고 임시방편으로 해서도 안 된다. 사회가 군대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문민우위의 원칙이 이 기회에 새롭게 정립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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