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목원대 금융보험부동산학과 교수 |
KB국민은행이 2001년 주택은행과 합병하여 탄생하였을 당시 자산 규모는 2위 은행의 배에 이르는 한국의 대표 은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범한 은행의 하나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국민은행의 추락은 바로 한국 금융 추락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세계 14위의 경제규모에 비해 금융시장 경쟁력은 81위에 불과하다. 저개발국인 가나(51위), 콜롬비아(63위), 캄보디아(65위)보다 한참 뒤진다. 10여 년 전에 동북아 금융허브의 비전을 가지고 많은 세계 100대 은행을 배출하겠다고 공언했던 한국 금융이 몰락에 가까운 추락을 하고 있다.
한국 금융의 급격한 추락은 몇 가지 원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경영진과 직원들의 문제로 인한 경쟁력의 상실을 들 수 있다. 은행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는데 경영진은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고 직원들은 각종 금융사고에 연루되고 있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진 직원들이 후진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각종 금융사고를 유발하거나 금융사기를 당함으로 금융의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
은행 직원들이 채권을 위조해 110억 원을 빼돌린 국민주택채권 위조사건과 국내 3개 은행이 연루된 일본 도쿄지점의 부당 대출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문제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경영진들의 권력다툼을 야기하는 지배구조의 개선과 직원들이 포함된 금융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선진화된 감독 체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두 번째는 한국 금융의 우물안 개구리식의 경영방식이다. 매킨지가 지난해 발표한 '2차 한국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의 부가가치가 지극히 낮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말레이시아의 CIMB은행과 국내1위 신한은행을 비교하면 명약관화하다.
작은 지방은행이었던 CIMB는 아세안 1위의 은행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아래 지난 15년 동안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신한은행은 같은 기간 '국내 1위'라는 목표에 안주하였다. CIMB의 전체 매출 40%이상이 해외부문에서 발생하고 있으나 신한은행은 10% 이내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경영방식의 차이로 인해 CIMB의 3배였던 신한은행의 순이익이 5년 전부터 역전당하고 있다. 국내은행들은 40여 년 전부터 해외에 진출해 있지만 현지화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 현지인이나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익은 거의 전무하다. 대부분의 수익을 교포와 한국계 기업에서 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는 서비스 혁신을 통한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세계를 향한 적극적인 현지화를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잦은 금융정책의 변경과 규제 방식에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형 금융정책이 변경된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녹색금융'으로, 현 정부에서는 다시 '창조기술금융정책'으로 바뀌었다. 대형 금융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경 되면 장기적인 비전이나 성장을 위한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다. 일단 대형정책을 정했으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를 이어가는 연속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한국은 금융기관에 대해 포지티브 규제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세세한 규제를 만들어 놓고 이를 어기면 징계를 내리는 포지티브 방식 대신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정해 놓고 이를 어기는 경우에만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선진국형 금융기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자율 경영과 금융 선진화를 위한 대폭적인 규제의 완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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