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
아울러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면서 이를 '문화권'이라고 정의하였다.
한편, 지난 7월 29일 시행된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문화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지역 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별로 특색 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지역의 생활문화진흥', '지역의 문화진흥기반 구축', '문화도시ㆍ문화지구의 지정 및 지원', '지역문화재단의 설립' 등을 그 정책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들에 조금 앞서 2012년 11월 18일 시행된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은 문화국가 실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공헌을 하는 자'라고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규정하면서 법률상으로는 최초로 '문화국가'라는 단어를 동원한다. 문화기본법의 '문화권' 또한 법률 조항에서 사용하기는 처음이다. 그 동안 '전통문화의 계승ㆍ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이라는 국가의 의무(헌법, 문화예술진흥법) 등을 천명했지만, 국민의 '문화권'과 '문화국가'의 실현을 직접 밝힌 적은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문화의 생산자와 향유자가 분리되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때의 문화는 소수가 만들어낸 다음에야 비로소 나머지 다수가 누릴 수 있는 이른바 고급문화이다. 이는 시민사회, 대중사회로의 본격 진입과 함께 일반 시민, 대중에게 정부에 의해 하향식으로 제공되었는데, 이것이 문화의 민주화(the democratization of culture)이다.
따라서 문화의 민주화를 위한 대표적인 수단은 유명작품 순회전시ㆍ공연, 문화시설 건립, 입장료 할인 등 접근성 확대 정책이 된다.
그러나 중앙집권적일 수밖에 없는 문화의 민주화 이념은 이제 그 한계가 분명하다. 태어날 때부터 누구든 창조적(creative) 사고(mind)와 행위(activity)를 할 수 있음이 두루 알려진 데다, 공유 지식과 개별적 부(富), 그리고 여가가 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현대사회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그 창조적 사고와 행위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에게 문화 향유력과 향유권, 그리고 문화 창조력과 창조권이 있음을 주장하는 법률이 문화기본법이다. 문화민주주의(the cultural democracy)가 바로 그 바탕 이념이다.
따라서 문화민주주의는 문화의 민주화의 대안이라기보다는 문화의 민주화가 그 자신을 포함하면서 진화 또는 진보한 형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화의 민주화든 문화민주주의든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여전히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일부 비판 속에서도 문화의 민주화가 추구하는 철학은 충분히 가치로운 일이다. 이른바 지금까지의 고급문화라는 것이 대개 대학에서 전공과목으로 가르쳐지는 전통적 장르예술에 가까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도 마찬가지다.
그럼, 우리의 생활 속에서 문화민주주의가 실천적 모습을 갖춘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생활예술이며, 이를 규정하는 법률이 지역문화진흥법이다. 자문해 본다. 생활예술과 전통적 장르예술 간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호(嗜好)와 기회(機會)의 차이만 있을 뿐, 없다! 생활예술은 장르예술의 양식적(樣式的)이고도 이월적(移越的)인 가치를, 장르예술은 생활예술의 일상성과 대중성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각급 정부, 문화재단, 문화시설 들이 명심 또 명심해야 할 특명이다.
전문 장르예술가의 지위와 권리 및 일반 국민의 문화권 보장, 그리고 생활문화 등 문화민주주의 이념에 따른 문화국가의 실현은 한 바구니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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