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 대전경찰청 정보과장 |
10여년 전 무덥던 어느 토요일, 오전 업무를 마치느라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각에 가까운 산으로 등산이나 가자며 동료와 시내 외곽에 자리한 계곡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한 주간 처리했던 사건 등 이런저런 업무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밥을 가져다주시던 주인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찾아와 경찰이냐고 묻길래, “네, 여기 다 형사들입니다”라고 했더니 갑자기 낙담하듯 옆에 풀썩 주저앉더니만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한 지 2년이 조금 안됐는데 개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건달처럼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찾아와 술을 먹고는 외상으로 산다며 가길래, 인상도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러자고 하고 내버려 두었더니 반년이 지난 지금은 자기 집처럼 찾아와 밥이며 술을 내키는 대로 먹고는 그냥 가버린단다.
신고를 해볼까도 했지만, 처음에는 몇 만원 가지고 문제 삼지 말자는 생각도 있었고, 괜히 신고했다가 뒤에 더 큰 행패를 부리면 어쩔까 하는 두려운 생각에 참고만 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액수도 커지고 영 무섭고 무슨 일이 터지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해 견딜 수가 없는데 이걸 어찌하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주인을 안심시킨 후 그들이 찾아와 밥을 먹을 때 전화 줄 것을 당부하면서 명함을 한 장 건네고는 산책을 겸해 등산을 마치고 돌아왔다.
며칠 후 문자가 한통 왔다며 형사 두 명이 다녀와 보겠다고 했다. 담당형사들은 생각보다 큰 전과는 없지만, 상습적으로 영세 상인들을 상대로 돈을 뜯으며 지내거나 행태를 부리는 건달 같다며 사건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형사들이 현장에서 밥을 먹으면서 처리한 것으로 위장했기 때문에 주인에겐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고 잘 마무리 됐던 일이 있다.
우리가 영화 등을 통해 익히 잘 아는 조직폭력배(組織暴力輩) 이른바 조폭에 대해서는 한때 범정부적인 소탕작전을 벌인 적도 있고 지금도 경찰은 해마다 집중단속을 벌여 일정 수준에서 관리를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조직폭력배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동네에서 혼자 또는 몇 명이 모여 힘을 내세우면서 주민들을 괴롭히거나 영세 상인들을 상대로 행패와 금품을 갈취하는 이른바 동네 조폭은 그 피해도 잘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신고나 제보도 없어 숨은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보통은 영세 상인들을 상대로 보호비나 자릿세를 명목으로 폭행과 협박을 통해 금품을 갈취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내야 할 공원, 하천변 등 근린지역에서 상습적으로 술에 취해 소란과 행패를 부리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경우 등 그 유형도 다양해 오히려 조폭보다 서민들이 느끼는 피해나 불안감은 더 큰 것 같다. 이러한 우려 속에 경찰은 우선 이달부터 앞으로 100일간 동네 조폭에 대해 강력단속에 나선다. 집중기간을 정하긴 했지만, 단기간에 그칠 일이 아니라 서민들이 직접 안전해 졌다고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인 단속에 나서 완전히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경우도 있겠지만, 어느 곳에 무서운 사람들이 자주 나타난다거나 누군가가 피해를 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작은 단서만으로도 경찰활동이 시작될 수 있는 만큼 많은 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신고ㆍ제보가 동네 조폭 근절의 가장 핵심요소다. 가까운 경찰관서에 전화ㆍ방문 등 직접신고도 가능하며 가장 쉽게는 112를 통해 신고할 경우 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 우선 대응하는 전담시스템이 작동하게 된다. 당연히 신고ㆍ제보자나 피해자의 신변안전도 철저히 보장된다. 우리가 생활하는 동네에서조차 불안감을 느끼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남아 있다면 일상의 행복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동네 조폭 근절은 우리가 생활하는 지역 울타리 안에서부터 안전을 지켜가기 위한 생활 속의 기초예방 치안의 첫걸음이자 행복하고 안전한 대전을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름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