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근 대전대 경영대학.전 STEPI대외정책실장 |
장밋빛 시나리오지만 이스라엘의 '하면 된다'는 '후츠파' 정신으로 창조경제를 성공시킨 것처럼 우리도 이루어내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1962년 경제개발계획을 실행한 이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하더라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란 단순히 과거의 추세를 지속하는 것만으론 달성할 수 없는 성과임에 분명하다.
우리 경제에 어떤 빅뱅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달러를 상회하고 세계 2위의 경제부국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경제상황과는 매우 다른 모습임에 틀림없다. 2050년 그 때가 오면, 우리가 세계경제를 앞서가고 리드하는 위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경제를 거시적으로 점검해 보자.
먼저, 우리 기업들이 국내 코스닥 시장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큰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기업 중 최근 5년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국내기업은 전무하며 지난 2005년 게임업체 그라비타가 유일하고 2000년 중반까지 9개사에 달했지만 경영악화와 상장 유지비용으로 하나 둘씩 폐지된 것이다. 현재 나스닥 상장회사는 미국이 2330개사로 87.8%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 93개(3.5%), 이스라엘 61개(2.3%), 캐나다 39개 순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꿈의 무대라 불리는 나스닥에서 국내기업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은 우리 벤처기업들의 성장동력이 취약하여 국제무대에 통하지 않거나 유수기업들이 작은 코스닥에 안주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 구글과 나스닥 관계자들이 구글 상장 첫날인 2004년 8월 19일 상장을 알리는 벨을 울리면서 찍은 기념사진.[연합뉴스 제공] |
현 정부 출범 이후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경제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려 하지만 아직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경제주체들 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기술사업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술사업화 시스템을 새로이 구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기술은 자동차의 바퀴와 같다면 투자펀드는 엔진이다. 투자펀드와 기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경제성장의 기본이다.
2005년 연구개발특구의 지정 및 2009년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출범, 그리고 2011년 독일 드레스덴 시와의 연구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 연구기능과 생산기능을 연계하는 기본 틀을 구축한 것은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바퀴를 장착했다고 그 자동차가 잘 달린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엔진 즉 투자펀드다.
세계시장에서 투자펀드를 유치하여 성공한 사례를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993년 이스라엘 정부가 출범시킨 요즈마 펀드가 그것이다. 요즈마 펀드는 정부와 민간의 공공펀드로 조성되어 초기 2억 달러로 출범하였으나 현재 40억 달러의 모태펀드로 성장하여 민영화되었다. 당시 총리가 주도하여 조성한 공적 펀드인 것이 다른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사례이며, 매년 이스라엘 국내기업 10개사를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현재 61개에 달하는 이스라엘의 나스닥 상장기업은 모두 요즈마 펀드의 결실이다.
요즈마 펀드와 우리나라의 정부 모태펀드나 창업투자회사의 투자펀드와는 사뭇 다르다. 먼저 초기단계 창업기업에 투자한다는 사실이다. 국내 펀드가 안전하고 투자성과가 확실한 중견기업에 투자하는 반면, 요즈마는 업력이 5년 미만인 초기단계 기업에도 과감히 투자한다.
요즈마펀드의 이갈 에를리히 회장은 “투자의 안전성이 아니라 철저히 모험적인 투자원칙을 지킨다”고 말한다.
둘째, 요즈마가 여타 펀드와 다른 점은, 1993년 조성한 후 실패로 마감한 이스라엘의 인발(Inbal) 펀드와 달리 요즈마의 성공을 확신하고 정부가 참여 투자가들에게 콜옵션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약간의 실패도 가정하지 않은 완벽한 성공을 가정한 펀드 설계였다는 것에서 이스라엘의 '하면 된다'라는 후츠파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셋째, 요즈마는 출범 시 미국의 초기단계 창업기업 대상 투자전문회사에게 펀드운용을 전담시켰다는 것이다. 미국 전문 펀드 운용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것이 나스닥 시장을 공략하는데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정부의 창조경제 관련정책은 단편적이고 일과성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차원에서 기술과 펀드를 조화롭게 연계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현 단계에서 가장 절실한 과제이나 이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즉, 창조경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고 국가전체를 조망하는 전문적 안목을 지닌 비전 제시자(Vision provider)가 있어야 한다. 과거 개발경제 시대에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실행해서 경제를 이끌어 왔지만 현재의 경제규모나 수준에서 정부에게 전문가적 비전을 제시하는 비전 제시자의 역할을 계속 기대할 수는 없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효시가 된 터만 교수나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를 창시한 이갈 회장 같이, 우리나라 경제에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고 원활히 굴러가는 바퀴에 연결하는 그 어떤 주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비전 제시자는, 현재 우왕좌왕하는 우리 창조경제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명확히 제시하고, 어떻게 하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지 보여 줄 수 있는 주체여야 하겠다. 아울러 현재 뒤죽박죽된 여러 정책과 시스템들을 정리해서 정부가 해야 할 것과 민간이 해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겠다.
대전은 여타 지자체와 비교해서 창조경제를 실현할 가장 좋은 입지에 있다. 여러 국책사업과 기술사업화 전문기관들이 집중되어 있고 지역 생산기능이 약하다 하지만 유수의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39개 코스닥 상장사가 입주해 있다.
1990년대 초반 이스라엘의 경제상황과 비교할 때 대전은 훨씬 나은 여건에 처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전이 창조경제의 전진기지가 되어야 하고 그 성공을 위해서는, 바퀴 하나만 열심히 돌리려는 주체가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고 세계무대에 오르기 위해 지금 해야 할 것을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주체가 나타나기를 고대해 본다. 지역기업이 나스닥에 입성하는 성공사례를 하루빨리 볼 수 있기를 바라며, 하나 둘 나스닥에의 물꼬를 틀 경우 봇물 터지듯 수많은 우리기업이 그 꿈의 무대에 당당히 오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세계 2위 경제부국을 달성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끝>
김선근 대전대 경영대학.전 STEPI대외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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