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훈 대전마케팅공사 사장 |
개인적으로는 똑똑한 사람들이 바로 '품의제도'로 대표되는 공조직의 의사결정시스템으로 인해 무능하게 되어 최악의 의사결정을 반복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도덕적인 사람들이 집단을 만들면 비도덕적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신학자 니버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공조직의 의사결정시스템인 '품의제도'는 마치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 의사결정을 하는 '민주적' 제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사결정에 참여한 개개인들의 의견을 알 수 없는 '무책임한' 제도라고 한다.
진정한 민주적 제도는 개개인별 의견수렴 내용이 다 표시되어야 하지만 현재 품의제도에서는 개개인의 의견은 나타나지 않고 집단의 의견만 나타나기 때문에 개개인별로 정확하게 성과를 평가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심지어 품의제도 내에서가 아니라 품의제도 밖에서 사실상 중요한 모든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방식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의사결정방식은 한 조직의 내부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감독조직과 산하조직간의 문제이기도 하고, 개인의 자율성이 억압되는 학교교육이나 가정교육에서부터 비롯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몇 년전 우리나라에서 영어강사로 활동하고 책을 낸 적이 있는 미국인 J. 버거슨은 한국의 성인남녀들의 정신수준이 고등학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냉소한 적이 있다. 또, KAIST 12대 총장을 역임했던 노벨 물리학상 수상경력의 러플린 당시 총장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매우 똑똑하기는 하지만, 기존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에 모험하는 킬러본능이 없어 세계적인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배워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민간기업들은 외국의 선진기업들의 좋은 제품, 기술과 시스템 등을 벤치마킹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성공을 거두었듯이 우리나라 행정도 외국의 선진행정제도에 대한 패스트 팔로어로서 외국의 효율적인 의사결정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여 도입하는 노력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각 개인에게 주어진 직무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단위업무담당제(Work Unit System)도 적극 도입ㆍ시행하고, 그동안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정책실명제, 직위분류제(position classification system)도 실질적으로 운영되도록 강화해야 할 것이다.
직위분류제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 미국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서 행정직으로 포괄적으로 분류한 직렬을 100개 이상 세분화된 직렬로 나눠놓고 있으며, 그렇게 세분화된 직렬별로 인사이동도 안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종류의 직무들이 일반행정직으로 분류되고 있어 경리계에 근무하던 사람이 감사계에 근무할 수도 있고 인사계에 근무할 수도 있으나, 미국의 경우에는 경리업무를 맡은 사람은 경리직으로 분류되어 경리업무만 맡을 수 있고, 또한 인사관리를 맡은 사람은 인사관리직으로 분류되어 인사관리업무만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우리나라 공무원들과 미국 공무원들이 만나면, 우리는 상대에게 직급이 국장인지, 과장인지 계급을 먼저 묻는 반면, 미국 공무원들은 우리에게 전문업무가 무엇인지 먼저 묻는다고 한다. 그만큼 담당직무의 전문성을 중시하고 그만큼 행정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행정의 의사결정시스템 등 제도도 하루 빨리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여 매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지난해 26위를 기록한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경쟁력 순위가 우리나라 경제력 순위 이상으로 조속히 올라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