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규 문화칼럼니스트 |
지난해에는 시에서 빌려주는 3평짜리 텃밭에서 상추, 가지, 토마토, 풋고추를 길렀었다. 한 주일에 한두 번씩 물을 주고 돌아올 때마다 바구니 가득 안고 오는 수확의 기쁨, 그리고 식탁에서 풍기는 싱그러움을 즐겼었다. 고구마 한 포기를 상추 대 뽑은 자리에 심었더니 거물고구마가 나왔다. 2짜리 큰 페트병만한 크기에 무게가 2㎏을 넘었다. 모두들 '복고구마'라며 놀라워했다. 이런 수확의 기쁨은 좋은 거름에서 오는 거였다. 해마다 마당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부엌에서 나오는 푸성귀 찌꺼기를 마당모퉁이에 모아 썩힌 거름, 그리고 기름집을 겸한 단골 떡집에서 얻은 깻묵덩어리가 큰 몫을 했다. 그리고 마당의 햇볕을 가로막는 과일나무의 가지를 대담하게 잘라주고 내 바깥나들이를 크게 줄여 물주기를 거르지 않은 것도 한몫씩 했다.
불현듯 옛 고향집 울안에 있는 텃밭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장독대 뒤 담 밑의 비탈진 정구지 밭, 우물 옆 조그만 남새밭은 철따라 채소의 종류가 늘 바뀌었다. 남새밭은 밥상과 아주 가까이 이어져 있는 식재료 창고였다. 행주치마 입은 채 어머니가 잰걸음으로 자주 다녀오는 밭이었다. 한국음식, 한국인 밥상의 특징은 채소가 언제나 식탁 가까이 있다는 데 있다.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텃밭을 가꾸었다. 영국 가정의 '집안 텃밭'은 산업화과정에서 도시 노동자들 집을 지어줄 때 뒷마당의 텃밭이 딸린 집을 지어준 데서 온 전통이라고 한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텃밭에 대한 그리움은 숲에서 삶을 시작한 인류의 몸에 밴 원초적인 그리움이 아닐까? 서구의 나라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업화가 급히 확산되면서 '전원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서 이미 오래 전에 정착시켰다.
소련의 다차(Dacha)는 세상에 잘 알려진 '서민의 별장'다. 옛소련의 음산한 사회주의 배급제도 아래서 국민의 숨통을 열어준 텃밭 제도다. 그리고 지금도 국민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서구 사람들은 옛소련의 사회주의가 붕괴되어 배급이 끊겼을 때 어떻게 굶어죽지 않고 살아났는가를 연구했단다. 그게 '다차'덕이었음을 확인했다는 소문에 한국 사람들도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에 갔다가 그곳 지인들의 '다차'에서 신나게 보드카를 마시던 이야기를 하며 부러워하는 한국인도 만났다. 기차로 가야하는 시골의 국유림에 정부가 길을 내 주고 일정 넓이의 땅을 빌려 주는 것이다. 상하수도와 가스시설도 해 주었다. 근처 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각자 자기 힘으로 집을 지었다. 여기서 길러낸 농산물은 모두 자기 것이었다. '다차'에 가서 보낼 주말에 대한 기대로 한 주일의 도시생활이 지루하지 않다는 사람이 많단다.
독일의 '클라인 가르텐'(작은 텃밭)은 농촌의 땅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조합과 땅을 빌려 경작하려는 도시민의 조합이 서로 임대차계약을 맺는다. 도시 사람들이 좀 더 즐겁고 평화롭게 전원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구석구석 감독한다. 농민의 농토보호와 적정한 사용료 수입, 그리고 도시민이 안전하고 즐거운 전원의 텃밭 경작을 정부가 살펴 주고 있단다. 영국 사람들은 주말에 가족들이 일요농장(선데이 팜)에 가는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길이 막혀 고통스럽지 않느냐는 물음에 한 영국인은 '좁은 공간'(찻속)이 얼마나 오붓한데…. 아이들과 동요며 민요를 함께 부르다 보면… 하며 주말을 기대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주말 텃밭을 꼬로니(식민지)라고 한다. 해외에 식민지를 두고 즐기던 옛날을 생각하며 주말에 왕이 된 기분으로 땅을 일구고 심고 가꾼단다.
우리도 서툰 귀농귀촌보다 우리 실정에 맞는 거국적인 텃밭운동을 새로운 새마을운동으로 펼친다면 피폐해지는 농촌경제도 살리고 좁은 콘크리트 속에 갇혀 사는 도시민에게도 활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한국의 텃밭문화운동이 일었으면 좋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