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절대평가의 타당성에 관해서는 다양한 시선이 교차한다. 영어의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큰 현실에 얼핏 비춰보기엔 그럴듯하다. 하지만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는 굉장히 민감한 선택지(選擇肢)다. 학력 저하는 논외로 하고라도 수능 영어의 변별력을 무위로 돌릴 만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는 게 가장 문제다.
절대평가 방식의 전제는 대학입시 제도를 비롯한 교육의 본질적인 맥락과 닿아 있다. 이걸 무시하면 교육적 연계성 없이 정권 따라 바뀌는 교육정책일 뿐이다.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 자체가 바뀌는 현행 상대평가가 완전무결하다는 뜻은 아니다. ‘과잉 영어’에 따른 과도한 학습 부담, 영어 실력 향상의 실효성 등 제도 추진의 배경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격고사처럼 되어 변별력이 떨어지면 영어 외 다른 영역 등급에 결정적인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쉬운 영어 기조가 강화되면 각 대학들이 변형된 형태의 영어 시험을 따로 치를 개연성도 남는다. 더 높은 수준의 영어 사교육이 형성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게다가 지금은 수능 영어시험의 변별력을 높여야 할 처지다.
공감대가 부족한 진짜 원인은 수능 평가방식이 교육 현실을 지배하는 키워드처럼 통용되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부담 경감은 마땅하고 옳지만 현실을 잘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 시행 시기가 꼭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영어교육을 개혁한다며 막대한 세금만 날린 경험도 되짚어보기 바란다. 확실한 부작용 예방장치는 필수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영어 만점 비율이 5%를 초과해 교실이 술렁이고 있다. 수능의 성격과 체계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불쑥 시행하다간 더 중대한 문제점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의미다. 절대평가 전환은 교육부를 비롯해 대학과 고교 등 당사자들이 함께 고민하며 시간을 갖고 풀어갈 일이라고 본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지금 철회하는 게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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