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한남대 총장 |
이제 여름방학이 끝났고 대학생들이 학업을 시작한다.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亦說乎)란 말도 있고, “많이 아는 자보다 좋아하는 자, 좋아하는 자보다 즐기는 자가 더 좋다”(知之者 如好之者 好之者 如知者)라 했으니 학업을 즐겨야 하고 남 주기 위해서 배우도록 하자. 남이란 부모ㆍ형제요 이웃이요 국가와 국민이며 세계인이다.
최근에 TV드라마 '정도전'과 영화 '명량'을 보았을 것이다. 그중에 정몽주(1337~1392)와 이순신(1545~1598)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요즈음 그들의 충성과 애국적 리더십이 시정의 화제다. 2학기 대학생들이 본받을 국가지도자의 모델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이순신 제독은 오랫동안 우리들의 사표가 되어왔고, 특히 위기관리 지도자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영국의 윌슨 제독보다 더 존경받고 심지어 일본사람들까지도 귀히 여기는 지도자다. 그가 남긴 어록 중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는 말은 성경에서도 볼 수 있는 역설적 결단이고,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들이 꿈틀대고 산을 향해 다짐하니 초목들도 알아듣네”(誓海漁龍動 盟山草木知)는 우직한 배포를 가늠할 수 있다. 그의 스케일이 얼마나 대단한가. 백척간두에 놓인 조국을 앞에 놓고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經 足懼千夫)란 결의를 다지고 있지 않은가. 그의 민심 수습을 최우선으로 여긴 애민과 원칙을 지켜나가는 공정, 그리고 전쟁수행능력이 탁월한 실력이 최근 얽히고 설킨 정국을 놓고 속수무책인 현실을 보면서 더욱 절실히 그립다. 그 반증으로 1500만 명 이상이 '명량'을 관람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 말 출신으로 실천적 의리의 모범인 정몽주도 역시 그리운 지도자다. 정몽주를 참살한 이방원까지도 “부왕(이성계) 때 양정(兩鄭)이라 했는데 한 분은 정몽주요 또 한 분은 정도전이다. 정몽주는 고려의 시중이 되어 충성을 다했고, 정도전은 부왕(이성계)의 은혜에 힘을 다했으니 두 사람의 도리는 모두 옳은 것이다.”(태종실록)라고 회고했다. 정몽주와 이성계는 서로 친했고 극진히 아꼈지만, 최종목표가 달라 갈라선 것이다. 정몽주는 고려의 개혁을, 이성계는 역성혁명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려의 망국과 함께 선죽교에다 붉은 피를 뿌렸지만, 고려를 지키기 위한 그 절조와 충성은 두고두고 애국충정의 귀감이 되었다. 그를 죽인 태종이 나서서 문충(文忠)이란 시호와 '영의정부사'란 직함을 추증함으로 일약 '만고의 충신'으로 복권시켜 놓았다. 1431년 세종은 고려말 3은(三隱)에 대해 “목은 이색은 절의가 부족했고 포은 정몽주는 순실(淳實)했으며, 야은 길재는 모(圭角)가 났다”고 평가했다. 정몽주의 의리지학(義理之學)은 오늘날 젊은 대학생들이 대종으로 삼고 본받아야 할 리더십이다. '의'는 도덕성과 올바름이고, '이'는 이치와 상식인데, 요즘 정계에서는 이런 '의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까 애국 시인 한용은(1879-1944)까지도 “이순신(李舜臣) 사공 삼고 을지문덕(乙支文德) 마부 삼아 파사검(破邪劍) 높이 들고 남선북마(南船北馬)하여볼까 아마도 님 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고 노래하여 국난 지세에 멸사봉공했던 지도자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내 메모노트를 보니 “기둥은 생각지 않고 자기 쓸 목침부터 잘라간다”(爲棟樑 先折木枕)와 “입으로 농사짓는 자는 많으나 손수 쟁기 잡는 자는 드물다”는 말이 있어 나의 눈길을 끈다.
이번 학기에는 학과공부뿐만 아니라 뒤엉킨 조국의 상황을 타개해줄 난세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