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오 대전문학관장 |
서울대학교의 어떤 교수님께서는 프랑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국의 현대 자유시'를 강의했더니 흥미를 잃고 떠나가기에 다음에 '한국의 시조'를 강의했더니 '이것이 바로 한국의 시문학'임을 알고 흥미 있게 들었다고 한다.
한국의 민족 전통 시문학이 있느냐고 물으면 시조가 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고, 한국의 고유한 시문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앞으로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한국 문인들이 노벨상을 관계하는 스웨덴 한림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조에 관해 질문을 받았으나 누구하나 시원한 대답을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한국 시단의 저명한 시인들 가운데 최근 시조를 창작하고 발표하는 분들의 모습에서 존경이 느껴진다.
일찍이 한국문단은 3ㆍ1운동이 일어난 시기를 전후하여 왜색문학, 서구문학, 카프 문학이 자리 잡아가면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단절시키고 고사시켜 가려는 일제의 책략에 맞서고자 하는 자각으로 시조 부흥운동을 전개했다. 육당 최남선은 옛시조들을 모두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시조유취'라는 책을 만들고, 1903년경부터 써온 자신의 창작시조 108편을 엮어 최초의 신 시조집 '백팔번뇌'를 출간하면서 시조 부흥운동에 앞장섰으니 이 운동은 문학 독립운동이라 해도 될 것이다. 이어서 이병기, 이은상, 조운 등 많은 학자들이 앞장서서 시조 혁신운동 전개에 진력하였다. 이는 시조문학 독립운동의 확산기로 볼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가까스로 겨레의 얼이 담긴 시조문학의 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교육정책에 의해서 운영되는 학교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교단을 대부분 지배하면서 시조문학의 계승과 발전은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영향은 해방을 맞았어도 벗어날 수 없이 지속되었으니 완전한 문학해방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단적으로 교과서 개편과정에 나타나고 있다. 제4차 교육과정 개편 시까지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시조편서는 90편 남짓 되었지만 제5차 개편시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시조는 모두 37편, 제 6차에 30편, 제7차에 28편으로 날로 고갈되어 가고 있다. 일본은 그들의 전통 시가인 하이쿠를 국민 시로 삼아 천만 명이 넘는 동호인이 활동하고 있고, 유럽과 미국의 교과서에 하이쿠를 싣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한국에도 독립된 전통 시문학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답을 못하는 정도를 넘어 '없다'라고 대답할 교사들이 없을지 궁금하다. 문학관의 문학교육 과정에서 시조를 함께 강의하다 보니 상당수의 참여자들이 '알고 보니 정말 시조를 배우고 싶다' 얘기한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유럽의 고유 전통 시에 못지않은 우리민족의 시조를 우리 스스로 배우면서 미국 하버드 대학의 한국학 연구소장 존 멕켄박사 말처럼 '우수한 한국의 시조를 세계적으로 보급하는 것이 가능하고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시조문학 발전을 위해서는 시조를 국민문학으로 확산시켜 나가기 위해 힘쓰고, 학교 교육과정에 시조 교육 비중을 확대하면서 감상뿐만 아니라 짓기교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수준별 교과서를 개발해서 활용함은 물론, 문학을 가르치고 창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시조를 기반이요 교양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시조 시인들을 중심으로 한 시조문단은 훌륭한 시조를 창작하여 독자들의 호응을 얻음은 물론 모범적인 시조 교재를 만들어 보급하는데 앞장설 것을 주문하고 싶다. 흔히 문화적 주체성을 잃으면 혼이 빠져버린 사람이 되고 만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만주국은 자신의 언어를 버려서 전쟁없이 멸망하였음을 가슴에 새기면서, 언어정책에 심혈을 기울이는 지혜로운 세계의 정치가들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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