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우 전 안전행정부 제1차관 |
정부는 총리소속으로 국가안전처를 설치하고 후진적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지 넉 달이 되어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이 실행되었는지 들어보지 못했다. 재보궐선거와 정쟁 때문에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국가안전처는 아직 출범조차 못했고 세월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연일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온 나라가 들썩이며 책임자를 문책하고 특단의 대책을 발표하곤 하였지만 결국은 잊히고 흐지부지 했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떠올랐다.
실제로 군부대 총기사고, 윤일병 구타사망사건 등 새로운 사건이 지면을 장식하면서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관심사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물론 급변하는 주변정세나 어려운 서민경제를 생각할 때 우리가 언제까지나 세월호 참사에 매여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이대로 잊혀 과거의 수많은 사고처럼 유야무야되고 만다면 수백 명의 희생은 헛된 죽음이 되고 우리나라는 정말 희망 없는 나라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문제가 너무 크고 뿌리가 깊어서 웬만한 대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까 아니면 대책을 추진할 행정체제가 부실한 것일까?
여러 각도에서 문제를 진단할 수 있겠지만, 문제해결을 위한 총론은 있는데 각론이 미흡하고 계획은 있는데 실행이 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생각된다. 정치권도 정부도 총론에는 쉽게 합의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정파 간, 부처 간 이해관계를 앞세워 대책을 표류시키기 일쑤다. 각론에 합의해도 정치적 합의를 통해 차 떼고 포 떼다 보면 대책이 부실해 지는 경우도 많다.
무책임한 의견을 늘어놓는 얼치기 전문가들이 국민과 정부를 현혹시키고 현장 경험 있는 전문가가 정책부서에 많지 않아 대책의 구체성과 현장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현장경험이 있는 전문가들 대신 일반 행정가들이 사고대응을 좌지우지하고 순환보직 인사를 운영하다 보니 전문성이 쌓일 겨를이 없고 대책을 끝까지 책임지고 챙기기가 어렵다.
우리 국민 중 재난발생 시 대처요령을 훈련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다. 관련기관별로 재난매뉴얼을 갖고 있지만, 누구도 매뉴얼의 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비상대비훈련도 적당히 형식적으로 하다 보니 실제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에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이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승선 전에 비상시 대피요령을 충분히 배우고 실행하였더라면 두 시간의 대피 가능시간이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많을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여객선 안전도 부실하지만 노후한 도로, 교량, 철도, 항만 등에 대한 안전관리에도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대대적으로 안전실태를 점검하였겠지만, 긴장이 풀리면 다시 해이해질 것이다. 이번만큼은 국민이 걱정하지 않도록 항구적인 안전체계를 구축하여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때마침 한국을 방문한 교황이 우리 국민에게 고통과 갈등에서 벗어나 사랑과 희망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교황의 말씀처럼 우리 사회가 사랑과 희망으로 거듭나 후세의 사가들이 대한민국이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국가혁신을 이루어 진정한 안전 대한민국을 만들었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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