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모든 도시들이 문화도시의 슬로건을 내건다고 해서 그것이 문화생산과 소비의 선순환구조를 만드려는 구체적인 노력으로 직결하지는 않는다.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정책과 제대로된 사업 없이 애매한 수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도시들 가운데 명실공히 도시정체성과 문화도시 슬로건을 연결한 도시는 문화수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중심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광주다. 그것은 이른바 예향광주라는 오랜 정체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근대도시의 형성기부터 오지호나 허백련 등과 같은 예술가들이 터전을 잡고 도시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함께 한 광주 특유의 예술적 소통 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5년에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문화도시 광주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역균등발전정책 차원에서 볼 때 경제적 실효가 적어 보이는 문화부문에 집중하는 것은 빛좋은 개살구라는 비판도 있지만, 광주는 문화도시 이미지를 문화정치로 연결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사회적 소통기제로서의 영향력이 큰 예술을 통하여 광주의 도시정체성을 지탱하려는 비엔날레 문화정치가 쉼없이 이어졌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아 광주정신을 주제로 민주와 인권의 가치를 고양하고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을 되새기고 전세계 사람들에게 광주정신을 알리고 공유하자는 취지로 특별프로젝트가 열리고 있다. 기획전시와 퍼포먼스, 학술심포지엄 등 3개 부문에 총 20억원의 예산을 들인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프로젝트는 초심으로 돌아가 광주정신을 확인하자는 차원에서 출발했다. 이 가운데 하나인 기획전시 <달콤한 이름, 1980 그 후>는 독일의 케테 콜비츠를 비롯해 중국의 노신, 미국의 벤샨 등 평화와 인권, 평등, 해방의 가치를 담아 20세기를 관통한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비롯해 14개국 예술가들이 참가한 특별한 전시다. 이 전시의 말미에는 학술프로그램의 성과를 모아서 광주정신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광주선언을 예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들이 빛을 바랠 위기에 처했다. 홍성담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이 정치적 해석에 휩싸이면서 전시유보 상태에 묶이면서, 윤범모 책임큐레이터가 사퇴하고, 3인의 참여작가가 작품을 철수했으며, 13인의 작가가 탄원서를 제출하며 작품 철수를 예고한 상태인데다가, 케테 콜비츠 작품을 대여한 사키마미술관과 오키나와 작가들도 전시참여 철회를 언급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오는 9월 16일에 대토론회를 열어 전시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전시불발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논란이 된 현직 대통령 허수아비 이미지를 수정했지만 광주오월 시민군과 주먹밥 어머니가 세월호를 번쩍 들어올려 모든 시민학생을 구출한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전시유보 상태에 놓여있다. 민주, 평화, 인권 등 광주정신을 내세우는 광주에서조차 표현의 자유를 지키지 못한다는 장탄식이 나오고 있다. 4ㆍ19와 5ㆍ18을 넘어 4ㆍ16정신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초석 역할을 해야할 세월호특별법이 표류하고 있는 마당에 광주에서 들려오는 <세월오월>의 파열음이 시름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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