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긴밀하지만 유쾌한 사이는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지지고 볶으면서 애써 만든 법을 헌법재판소는 아주 여러 번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결정 해왔다. 더러는 시간을 정해주고 그 때까지 법적인 하자를 고치도록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국회가 고분고분 헌재의 결정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국회가 법률 개정을 하지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 헌재가 '위헌' 결정한 법률을 국회가 개정하지 않은 사례가 26건, '헌법불합치' 결정되었음에도 손을 보지 않은 법률이 13건이다. 집시법도 그 중의 하나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9월,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 집회를 금지한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국회가 이듬 해 6월까지 바로잡아 달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5년이 흐르도록 국회는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의 야밤은 물론, '해가 뜬 후 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의 훤한 대낮에도 해당 법률을 고치려고 일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민낯도 만만치 않다. 2009년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별별 해괴한 방법을 깡그리 동원하여 미디어관련법들을 번개치기 했을 때, 소수의 국회의원들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해당 법률들의 처리절차가 잘못되었고 따라서 그 법률들이 무효라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미디어관련법이 위헌ㆍ위법하게 처리되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따라서 무효'라는 청구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소수의 국회의원들은 다시 한 번 더 헌재에 그 법률들의 무효 확인을 청구했으나 헌재는 그 청구마저 기각했다. 다수의 헌법재판관들은 미디어법 처리의 위헌ㆍ위법적인 요소들을 매우 놀랍게도 '경미한' 것으로 보거나 그 하자들을 국회의 자율로 해소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눈물겨운 배려'를 했다. 하긴 헌재가 그 때 미디어관련법을 무효라고 결정했어도 집권 다수당은 더욱 정교한 방법을 동원해 '다시 번개치기'를 했을 개연성이 높고 따라서 '국회 자율' 운운한 것은 공사다망한 국회의원들의 '헛수고'를 사전에 차단한 '선지자적' 효과도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헌재는 '법을 어겨도 위법은 아니다' 따위의 숱한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2013년 출범한 제5기 헌법재판소는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국민들을 위해 '차양막'을 설치했다. 작은 접이식 파라솔 두 개였다. 사회적 약자들이 최후의 피난처처럼 헌법재판소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할 때, 몰아치는 비를 피하거나 따가운 햇볕을 조금이라도 가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시민들은 헌재 앞에서 '비가 오기 전이나 비가 온 후'에도 마음 놓고 홀로 시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인 시위자를 위한 파라솔 두 개가 국민들의 아우성을 듣는 헌재의 귀로 여겨졌다.
며칠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사당에서 농성을 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났다. 유가족들은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해 왔다. 국회의장은 친서까지 전달하며 유가족들에게 '법을 준수하라'고 말했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 100미터 이내의 경내에서 집회ㆍ시위가 금지돼 있다고 훈수도 했다. 법과 헌법을 어겨가면서 날치기로 '법'을 만들고, 어긋난 법을 고치라는 헌법의 명령도 뭉개고 있는 국회가 '준법'을 고래고래 외친다. 낮은 자세로 귀를 열어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외려 국민들에게 '입을 닥치라'고 부르대는 국회의 큰 입만 나부낀다. 말하는 입이 국회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듣는 두 귀가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할 때다. 일제의 폭정으로부터 해방된 지 예순 아홉 해가 된 오늘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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