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화 문화독자부장 |
술 취한 사람이 쌀쌀한 날씨에 꽤 오래 있게되면 저체온증으로 위험해 질 수 있고 불량한 아이들은 지적질이라도 해서 자신들의 행위가 생각만큼 무용담도 아닐뿐더러 폭행은 나쁜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익숙함은 용기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관자 효과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을 터이니,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겠지 하는 생각. 그래서 내 책임을 가벼이 해주는 '책임분산'의 뒤에 숨는다. 이러한 방관자는 법적 책임은 없다 해도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더 나아가 '힘'있는 가해자와 결합해 아주 참혹한 비극을 만들어낸다.
상상 만해도 몸서리가 처지는, 김해 여고생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가해자들이 동원한 수단과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부대 소속 윤 모 일병에게 가해졌던 폭행을 두고 우리는 굳이 '악마를 보았다' 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학교든 직장이든 사회에서든 보편적 사회병리현상이 되버린 '왕따'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방관자도 한순간에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 고리를 어떻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
숨진 김해 여고생은 가해자들에게는 '생명'이 아니라 자신들이 쓸 생활비와 유흥비를 벌어들이는 기계적 도구였을 것이다. 도구는 쓰는 이의 목적에 적합하도록 두들기고 담금질만 하면 된다고 서로 동조했고 이탈자 없이 죽음으로 내모는 일에 가세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법률적으로는 종범인 '방관자'들의 주범과의 결합행태인 것이다. 이들은 이러했을 것이다. '힘'있는 우두머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과 더 나아가 우두머리의 신뢰를 얻고자 경쟁적인 질투심으로 무리의 구성원에 되려했던 것이다.
이러한 절박한 무리참여 욕구, 왕따 기피 노력은 여고생이 겪었을 죽음의 경계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을 압도했다.
윤 모 일병 구타사망 사건도 맥락은 같을 것이다. 가해자의 한 명이 “차라리 윤 일병이 죽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증오의 표현이기보다는 실제적 간절함이 담긴 참으로 섬뜩한 말이다. 이 병사에게 있어서 윤 모 일병은 '힘'있는 주범인 이 병장의 골칫거리인 '물품'에 불과했고 윤 일병을 향한 이 병장(전 부대에서 선임병의 괴롭힘을 받았던 '피해자'였다)의 밤낮없는 가학의 시간(방관자가 되기도 어려웠을)을 모면하려면 윤 모 일병은 사라져야만 되는 것이다.
이 병장을 비롯한 가해병사들의 행위는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전기고문의자를 사용한 실험결과에서 보여지듯이 얼마나 우리가 명령에 취약한지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윤 일병이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더 이상 때리지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정말로 이런 짓은 못하겠습니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다 군대라는 특수성이 더해지면 결과의 참혹성은 증폭된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너그러움이 아니라 잔혹성은 사디스트, 정신병자 등 짐승 같은 사람들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잔혹행위를 저지를 수 있으며 실제로 일상에서 저지른다는 것이 사회심리학에서 가장 철저히 증명된 연구 결과이지만 그것이 야기하는 부조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뿐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인성'과 '도덕'을 부르짖지만 공염불처럼 들린다.
세상을 경쟁과 약육강식, 승자독식과 효율과 성과를 전부인 양 바라보는 시선에는 '사람'도 '생명'도 없으며 '존중과 배려'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제임스 프렐러가 지은 방관자라는 책에는 가해학생이 방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 본 적이 있을거야. 피해자 걔는 병든 가젤같은거야. 결국에 사자한테 잡혀 먹히고 말지. 그런게 바로 삶이야. 그런 애들은 항상 당하게 돼 있어. 그게 정글의 법칙이야, 강자만이 살아남지.”
방관자는 말한다. “우린 중학교에 다니고 있지 정글에 있는게 아니야”라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