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감]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글이 아니다

  • 오피니언
  • 미디어의 눈

[중도시감]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글이 아니다

김의화 문화독자부장

  • 승인 2014-08-14 14:08
  • 신문게재 2014-08-15 17면
  • 김의화 문화독자부장김의화 문화독자부장
▲김의화 문화독자부장
▲김의화 문화독자부장
늦은 밤거리에 쓰러져 있는 만취자를 보았거나 어린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싸움질을 할 때 그냥 외면하고 지나치는 것에 우리는 익숙하다.

술 취한 사람이 쌀쌀한 날씨에 꽤 오래 있게되면 저체온증으로 위험해 질 수 있고 불량한 아이들은 지적질이라도 해서 자신들의 행위가 생각만큼 무용담도 아닐뿐더러 폭행은 나쁜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익숙함은 용기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관자 효과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을 터이니,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겠지 하는 생각. 그래서 내 책임을 가벼이 해주는 '책임분산'의 뒤에 숨는다. 이러한 방관자는 법적 책임은 없다 해도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더 나아가 '힘'있는 가해자와 결합해 아주 참혹한 비극을 만들어낸다.

상상 만해도 몸서리가 처지는, 김해 여고생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가해자들이 동원한 수단과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부대 소속 윤 모 일병에게 가해졌던 폭행을 두고 우리는 굳이 '악마를 보았다' 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학교든 직장이든 사회에서든 보편적 사회병리현상이 되버린 '왕따'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방관자도 한순간에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 고리를 어떻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

숨진 김해 여고생은 가해자들에게는 '생명'이 아니라 자신들이 쓸 생활비와 유흥비를 벌어들이는 기계적 도구였을 것이다. 도구는 쓰는 이의 목적에 적합하도록 두들기고 담금질만 하면 된다고 서로 동조했고 이탈자 없이 죽음으로 내모는 일에 가세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법률적으로는 종범인 '방관자'들의 주범과의 결합행태인 것이다. 이들은 이러했을 것이다. '힘'있는 우두머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과 더 나아가 우두머리의 신뢰를 얻고자 경쟁적인 질투심으로 무리의 구성원에 되려했던 것이다.

이러한 절박한 무리참여 욕구, 왕따 기피 노력은 여고생이 겪었을 죽음의 경계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을 압도했다.

윤 모 일병 구타사망 사건도 맥락은 같을 것이다. 가해자의 한 명이 “차라리 윤 일병이 죽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증오의 표현이기보다는 실제적 간절함이 담긴 참으로 섬뜩한 말이다. 이 병사에게 있어서 윤 모 일병은 '힘'있는 주범인 이 병장의 골칫거리인 '물품'에 불과했고 윤 일병을 향한 이 병장(전 부대에서 선임병의 괴롭힘을 받았던 '피해자'였다)의 밤낮없는 가학의 시간(방관자가 되기도 어려웠을)을 모면하려면 윤 모 일병은 사라져야만 되는 것이다.

이 병장을 비롯한 가해병사들의 행위는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전기고문의자를 사용한 실험결과에서 보여지듯이 얼마나 우리가 명령에 취약한지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윤 일병이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더 이상 때리지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정말로 이런 짓은 못하겠습니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다 군대라는 특수성이 더해지면 결과의 참혹성은 증폭된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너그러움이 아니라 잔혹성은 사디스트, 정신병자 등 짐승 같은 사람들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잔혹행위를 저지를 수 있으며 실제로 일상에서 저지른다는 것이 사회심리학에서 가장 철저히 증명된 연구 결과이지만 그것이 야기하는 부조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뿐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인성'과 '도덕'을 부르짖지만 공염불처럼 들린다.

세상을 경쟁과 약육강식, 승자독식과 효율과 성과를 전부인 양 바라보는 시선에는 '사람'도 '생명'도 없으며 '존중과 배려'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제임스 프렐러가 지은 방관자라는 책에는 가해학생이 방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 본 적이 있을거야. 피해자 걔는 병든 가젤같은거야. 결국에 사자한테 잡혀 먹히고 말지. 그런게 바로 삶이야. 그런 애들은 항상 당하게 돼 있어. 그게 정글의 법칙이야, 강자만이 살아남지.”

방관자는 말한다. “우린 중학교에 다니고 있지 정글에 있는게 아니야”라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5.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1.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2.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3.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4.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5.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