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나는 방학을 하자마자 베트남 호찌민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다녀왔다. 아이 셋을 데리고 떠나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행히 동생네 집이라 편히 있을 수 있어서 큰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신나게 놀면서 열흘이라는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하루는 아이들끼리 편을 나누어 노는데 우리 아이들이 세 명에 조카가 두 명이라 짝이 맞질 않았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나 옆에서 보았더니 가장 어린 동생을 '깍두기'로 정하고 편을 나누어 노는 것이었다.
맞다!! 깍두기!! 내가 어릴 적에도 짝이 맞질 않거나 서투른 친구가 있으면 '깍두기'라고 하고 이쪽 편에도 껴주고 저쪽 편에도 껴주었었다. 놀이에서 소외되는 친구가 없도록 배려해 주었던 '깍두기'라는 것을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6학년인 우리 아들에게 깍두기에 대해 물었다. 깍두기는 나이가 어린 동생이나 놀이 방법을 잘 모르는 친구를 시키고, 놀이할 때 깍두기는 못해도 술래가 되지 않는단다.
다음 날, 조카 아이가 이상하게 생긴 물건(?)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물으니 베트남 제기란다. '따가오'라고 하는데 베트남말로 '제기를 차다'라는 뜻이란다. 큰 깃털에 아래엔 스프링 같은 둥근 모양이 여러 겹으로 되어 있어 발로 차보니 잘 날아 갔다. 이참에 놀아보려고 놀이방법을 물으니 조카도 잘 모른단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5명의 아이들은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첫 날 만났을 땐 반갑다고 난리법석을 떨더니만 한 공간에서 여러 날을 함께 지내다보니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에게 화도 나고, 여러 가지 갈등상황도 생기는 모양이었다. 결국, 같은 핏줄끼리 편을 갈라 패싸움이 일어났다. 울고불고 싸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남은 날들을 어떻게 보내야하나 잠시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걱정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서로 으르렁대던 아이들은 어느새 레고 블록으로 마을을 만들고 역할을 정해 놀고 있었다. 레고 프렌즈의 올리비아, 미아, 엠마, 스테파니, 안드레아 등의 캐릭터로 누구는 피자가게 주인, 누구는 경찰, 누구는 마굿간 주인, 누구는 공주라며 재미있게 역할놀이를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아이들이 서로 어쩌구 저쩌구 속닥거리면서 노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역시 아이들은 놀면서 다 풀리는 모양이다. 미웠던 마음도 속상했던 마음도….
방학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집 3남매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놀고 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6학년 아들도 여동생들과 딱지치기, 공기놀이, 레고놀이,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놀기만 하는 우리 아이들이 가끔은 걱정될 때도 있지만 분명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중요한 것을 배우고 있으리라 믿는다.
함께 놀이를 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 놀이방법을 해석하고 좀 더 재밌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창의적 사고, 놀면서 생기는 갈등상황을 해결하는 방법 등 학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놀면서 체득하고 있을 것이다.
2학기에는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놀이를 하면서 '깍두기'도 시켜보고, 베트남 제기차기도 해봐야겠다. 다른 나라 친구들도 우리와 비슷한 놀이를 한다는 것을 알면 녀석들도 신기해하겠지? 남은 방학동안 놀이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준비해서 2학기에는 재밌고 신나게 노는 우리 반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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