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50여년 만에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와 정보화 사회로 이행했고, 성장을 발판으로 중진국 수준에 올라섰지만, 의식과 제도적 측면에서는 선진국과 쉽게 좁힐 수 없는 틈이 여전히 크다. 지금의 정치 엘리트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희생정신, 투명하지 못한 사회, 분열과 갈등 등이 광복절을 앞두고 명량 열풍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이런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광복 이후의 국가적 과제라 할 것이다.
압축적인 경제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목표달성을 중시해 형식과 절차를 뛰어넘고 시간과 싸우면서 중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이런 가치관들이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제도로 자리 잡고 우리 '마음의 습속'(habits of the heart)에 침전되면서 선진사회로 가는 데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필자는 고쳐야 할 한국인의 마음의 습속으로 몇 가지만 열거하려고 한다.
첫째는 빨리빨리, 대충의 문화다. 자판기에서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컵을 빼는 성향이 디지털 시대에 더 두드러지고 있다. 결과를 기다리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각종 절차와 규정을 무시하고, 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도에 맞게 개정하는 대상일 뿐이다.
전형적인 목적과 수단의 전치현상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기본원칙조차 작동하지 않고 문제가 터지면 일회성 땜질로 처방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둘째는 편법과 반칙이 일상화돼 도덕 불감증에 걸린 사회이다. 공정성은 일종의 사회적 게임규칙이지만 절차를 지키는 자만 손해 보는 사회구조로 흘러왔다. 기득권 세력은 편법과 반칙을 일삼고 이런 사람들이 되려 사회에서 잘 나가고 성공한 것을 자주 보아왔다.
셋째는 연고주의와 온정주의이다. 중립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 기밀이 범죄자에게 전달될 정도로 법질서 준수보다 앞서는 것이 연고주의와 온정주의다. 이런 데서는 패거리 정치가 등장하고 법과 권위가 살아나기 어렵다.
넷째는 서민 다수가 기득권에 보내는 르쌍티망(ressentiment)이다. 성공하지 못한 다수는 기득권층의 정책 실패나 청문회를 통해 공정성을 훼손한 자들에게 일종의 적개심을 한풀이 형식으로 표출해 도덕적인 감정을 처리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리사범을 찾아내 감옥에 보내는 정치적 의식을 치르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다섯째는 종교가 민주화에 힘을 보태던 관성 때문에 정치적 이해관계에 휩쓸리면서, 아직도 고유영역을 지키지 못하며 확고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는 고속성장을 지속할 것이란 기대 속에 빚을 내서 잔치를 벌이는 사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평균 2%대의 성장을 기록했다. 앞으로는 제조업과 수출중심에서 서비스와 기술로 성장축이 이동하지만 고용 없는 성장, 고령화로 복지수요가 증대되어 성장의 짐이 된다. 공공부문의 지출을 줄여야 하는 이유다. 반면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인한 비정규직과 고용불안,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근로 빈곤 등 구조적 문제가 더 커진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문화 의식개혁 없이는 안 된다. 문화는 세대를 거쳐 형성되는 것이기에 단시간 내에 이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와 정의, 개인주의가 미국을 지탱하는 미국인의 신조인 것처럼, 우리 한국인에게도 한국을 이끌어갈 마음의 습속을 찾아내야 한다. 1962년 이래 지금까지 줄기차게 달려왔지만 식민지 시대, 압축성장 과정, 1997년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한국사회가 안은 정신적, 문화적 문제의 뿌리를 진단하고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우리의 사유방식과 행위규칙을 재구성하는 방법론 모색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개인적 자유에 책임감을 겸비한 근대적인 개인, 지연과 혈연이 아닌 자격에 의해 맺어진 인간관계, 도덕적 가치와 규범이 정착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마음의 습속이 우리 모두의 사고에 내면화되고 행동양식이 된다면 선진국은 우리 앞에 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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