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 건양대 총장 |
군은 평상시에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선으로 보이나, 위기시에는 국민이 마지막으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최후의 집단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군에 거는 기대는 물론 그만큼 규율이 엄격하고 군인들은 용맹함을 갖추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더욱이 요즈음 같은 평화시기에는 군의 임무가 국토안보 뿐만 아니라 각종 재난구호에까지 미치게 되고, 또 세계평화를 위해 세계방방곡곡에 파병되어 국위를 선양하는 등 전평시를 막론하고 꼭 필요한 친구같은 존재로 인식되어 '국민의 군대'라는 말이 살갑게 느껴질 정도인 것이다.
최근 일련의 군 사고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을 근간으로 하는 군 조직에서 생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 '상명하복'의 원칙에 대한 새로운 검토를 제기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그같은 사건ㆍ사고는 단발성도 아니고 항상 일어나는 것이 되어버린 만큼 모든 국민과 국가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요즘 아이들이 가정교육이 안되어서, 혹은 학교에서 교육이 제대로 안되어서 잘못된 버릇이 군대까지 연장되어 그같은 사건ㆍ사고의 빌미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말미암아 초ㆍ중ㆍ고교의 교육이 입시 위주로 진행되면서 자연히 인성교육은 소홀히 되었고, 가정에서조차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가정교육이 상실되는 등 수십 년 교육정책의 난맥상이 이제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 것이라는 얘기다.
필자는 군대와 대학의 공통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즉, 어린 학생들을 데려다가 책임있는 시민으로 성장시켜 사회에 내보내는 교육의 기능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인의 성장단계에서 군대나 대학과정을 지나면 더이상 책임있는 교육을 받을 과정은 없다. 그래서 어떤 나쁜 습성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고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군대나 대학에서의 교육 뿐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수년전 초ㆍ중ㆍ고교 학생들에게 교육현장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일부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장한 바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체벌을 하지 못하며, 학생은 복장ㆍ두발에 대한 자율권을 가지며, 학생들이 교육정책에 참여할 수 있다는 등을 골자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선생님들의 교권만 무력화시켰고, 학생들 사이에 소위 왕따문화만 양산시켰을 뿐 이렇다할 긍정적인 변화는 보이지 못했다.
최근 군내부에서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군인권법'의 제정이 지지부진한 탓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군의 특수성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칫 군본연의 조직구성을 와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현재 학교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권의 추락으로 거의 방치상태에 놓인 학교교육의 현실을 볼때, '군인권법'에도 큰 기대를 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인성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수년전 학교 인근에서 사단장을 하고 육군훈련소장을 역임했던 한 장군이 만날 때마다 강조했던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이 떠오른다. 그 장군은 군내부에서 생기는 문제들의 원인을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힘들어서' 라고 진단하고 과감하게 '병 상호간에 정감어린 인사말하기' 운동을 전개했다. 업무시간을 제외한 내무생활 시간에는 나이 어린 선임병이 나이 많은 후임병을 대접해주고, 병상호간에는 서로 지시 복종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로 돕는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수년 동안 실시해본 결과 사건사고 건수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자랑스러워하던 기억이 새롭다.
필자도 당시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이 무슨 이유에선지 전군으로 퍼져나가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가졌던 바가 있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가 진정한 사건의 발단이라면 그것을 법으로 해결해보려는 성급한 발상보다는 보다 근원적 처방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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