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명이라는 대규모 병력과 당시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무기에다 희생된 조선인만 200만명이 이르는데, 난동으로 치부됐다. 영화 '명량'에서 그려진 이순신 장군의 깊은 고뇌를 보더라도 분명히 왜란이 아니라 전쟁이다. 그런데 지금도 왜란이다.
당대 권력자와 그 권력의 계승자들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참혹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왕과 권력층에 의한 왜곡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 조일전쟁 당시 공을 세운 이들에 대한 공신책봉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조선 14대 임금 선조는 '임진왜란' 후 호성공신(扈聖功臣)과 선무공신(宣武功臣)을 책봉한다. 호성공신은 전쟁 발발 10여일만에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주한 선조의 피란길을 수행한 대신들이고, 선무공신은 왜적과 싸운 영웅들이다. 문제는 공신 반열에 오른 이들 중 목숨을 내걸고 전장을 누빈 공신(18명)보다 선조와 함께 도망간 공신(86명)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상한 논공행상이다. 의병장 곽재우를 비롯해 전직 관료와 유생, 승려, 노비 등 자발적으로 왜군에 맞선 이들은 전쟁 후 모두 버림받았을 정도다. 논공행상의 최악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논공행상은 요즘도 반드시 필요하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라는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당선인들의 '선거공신'도 마찬가지다. 정신적ㆍ물리적으로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게 맞다.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 등 측근 인사는 필요하다. 권력을 틀어쥔 당선인의 초기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공신들의 갈등과 반란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측근 등용은 과감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선거공신을 등용해도, 등용하지 않아도 호불호(好好)는 반반(半半)이다. 측근 인사 논란의 본질은 '누구의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구의' 사람일 수밖에 없다. 사람관계 때문에 잠재된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발탁당한다면 가혹한 처사다.
전문성도 최우선은 아니다. 전문성이라면 이론에 정통한 학계나 유사한 일을 해봤던 전직 관료, 관련업계 등 나름 그 분야의 전문가만 할 수 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회전문' 인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온갖 비리에서 전문가들은 빠지지 않고 공범으로 등장하는 걸 익히 보고 들어왔다.
측근 인사 논란의 핵심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느냐다. 논공행상에 따른 인사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각을 바꿔볼 때다.
윤희진ㆍ정치사회부 법조사건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