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논설실장 |
주말 이틀간 혹독하게 복통을 앓았다. 몽롱한 머리로 아인슈타인 박사가 만든 사랑의 공식을 풀었지만 풀리지 않았다. 남녀관계는 고리 중간을 꼬아 안과 밖이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내부는 외부로, 외부는 내부로 연결돼 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시공간을 초월한 불변은 없기에 이 말이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변한 모습대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일지 모른다.
철학자 김용옥은 '애(愛)'는 아껴주면 그만이라며 직설을 날린다. “하루 종일 가사에 시달려 피곤한 부인에게 잠자리에서 섹스를 요구하는 놈도 미친 남편이고 하루 종일 회사에서 격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 받고 우울해져서 술이 취에 돌아온 남편에게 섹스를 요구하는 여인도 미친 아내이다. 서로를 아껴준다면 우선 그 몸을 아껴주어야 할 것이요, 사랑의 증표로 몸을 해치는 바보짓을 해서는 안 된다.”
100% 공감은 안 되지만 마음이 살아 있으면 된다는 암시와 위안을 준다. 장자(莊子)는 마음의 죽음보다 큰 슬픔이 없다고 했다. 전쟁을 일으키고 왕국을 파멸시키는 사랑도 변한다. 스파르타를 버리고 새 연인 파리스에게 가서 트로이전쟁을 일으킨 헬렌. 그녀는 미모의 단위가 됐다. 물에 빠졌을 때 1000척의 배를 띄우게 하는 미모가 1헬렌이다. 1척의 배를 띄우는 미모라면 1밀리헬렌(mH)은 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 출전시킨 배가 도합 13척이었다.
그런데 이 몇 헬렌의 사랑이라도 세월에 씻기면 변질된다. 그것을 상징적인 거리로 표현한 유머가 있다. '20대에는 포개져서 잔다. 30대에는 마주보고 잔다. 40대에는 천장 보고 잔다. 50대에는 등 돌리고 잔다. 60대에는 따로따로 잔다. 70대에는 어디서 자는지 모르고 잔다.' 산업혁명으로 주거공간이 부족하면서 한 침대를 쓰는 전통이 자리잡았다. 요즘 산업혁명 이전으로 돌아가는 부부들이 부쩍 늘어났다.
잠자리의 수학 중에는 1인치(2.54㎝) 이내로 바짝 붙어 자는 부부가 30인치(76.2㎝) 이상 떨어져 자는 부부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것도 있다. 돌아누워도 등을 대고 자면 마주 보고 떨어진 자세보다 애정도가 높다. 어떤 이유에서든 각방을 쓴다면 일단 멀어지는 신호다. 잠자리도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곁에 있기만 해도 더워지면 일단 마이너스헬렌으로 가는 적신호라고 보면 된다.
변하는 것이 모든 관계의 모습이기는 하다. 시간이 흐르면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기부여 시스템이 무력화된다. 일종의 중독인 사랑에도 내성이 생긴다. 그렇게 보면 반감기가 44억년 되는 우라늄 사랑, 2만4000년이 되는 플루토늄 사랑은 오히려 파괴이며 집착일 수 있다. 불확실하지만 마이크로헬렌, 나노헬렌, 아니 구명 튜브 하나 던져주는 정도인 피코헬렌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게 어딘가. 주치의를 자임한 사람 몰래 해본, '문화'적일 것도 없는 잡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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