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주 갤러리봄 관장 |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명작들을 국내로서는 최대 규모로 만나볼 수 있었던 이번 전시는 19세기 후반 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폴 세잔, 조르주 쇠라, 폴 시냐크, 폴 고갱 등 당대 거장들의 회화 75점과 함께 당시의 건축 드로잉, 일본의 영향을 받은 공예품, 파리 뒷골목 스케치 100점도 공개하고 있다.
빛은 우리에게 있어 감히 그 부재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데 인상주의 화가들은 바로 그 빛을, 시시각각 변하며 흔들리는 생동감까지 그림 속에 담으려 했던 게 틀림없다. 전시는 인상주의부터 후기인상주의까지 이르는 시기의 미술사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미술사조는 프랑스 근대사와도 맞물려 있어 구체적인 미술작품을 통해 근대 도시 파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크고 웅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벽면에 커다란 포스터에 그려진 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1886년)이 보이자 전시회에 입장하기도 전부터 그림 속의 여인에게 첫눈에 반한 듯 설렘을 느꼈다. 모네는 당대에도 자신의 미술을 인정받는 작가였지만, 후대인 지금도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까지 모네의 그림을 알고 좋아할 정도로 열렬히 사랑받고 있다. 선명하지 않지만 빛과 바람에 흩어지는 듯한 그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모네의 그림은 단연 돋보였고, 인상주의의 이론적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도 금방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았다. 또 그림 속 여인의 차림인 모자와 옷, 스카프, 양산 등은 근대의 세련된 느낌을 준다.
인상주의 이후에는 과학적 색채이론에 기초하여 순색을 점으로 찍어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 속에서 혼합시키는 방식으로 그린 각각 조르주 쇠라, 폴 시냐크의 작품인 '포르 탕 베생'(1888)과 '아비뇽 교황청'(1909), 도시화ㆍ근대화에 편승하지 않고 원시적 삶을 추구한 폴 고갱의 '노란 건초더미'(1889) 등이 있다. 또 구성은 단조롭지만 강렬한 색상을 뽐내는 빈센트 반 고흐의 '시인 외젠 보흐'(1888)와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를 파악해 자연의 모든 형태를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로 그려내며 보이지 않는 내면이나 세계에 주목한 상징주의 화가 중 하나인 폴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1890) 등을 눈여겨보며 작가마다 독자적인 개성을 미루어볼 수 있었다. 한편 근대화된 도시풍경에 대한 스케치도 있었는데 1990년 파리만국박람회 장면, 때맞춰 세워진 에펠탑 등 파리의 근대성을 상징하는 표상들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 샤를 폴 르누아르의 '폭우 속에 1900년 만국박람회를 찾은 방문객들'(1900), 조르주 가랑의 '1889년 만국박람회 당시의 에펠탑'(1889) 등이 그러하다.
박물관을 나서며 비추는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눈부신 여름 햇빛에 반사되는 물이나 잎사귀, 바닥의 타일 하나까지도 왠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던 건 그냥 기분 탓이었을까. 누가 여름 아니랄까봐 역시나 더웠지만, 그래도 오후의 내리쬐는 햇빛이 싫지 않았다. 타오르는 햇빛 아래 그늘이 더없이 소중한 것처럼 일상 속에서 오랜만에 맞이한 많은 작품들이 참 반갑고 보배로웠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오르세미술관전의 제목이기도 한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에는 작가들 자신의 독특한 개성으로 그려낸 또 다른 양식들이 빈틈없이 메우고 있으며, 근대화의 여러 양상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우리의 삶이 익숙하게, 혹은 새롭게 숨 쉬고 있어 작품도, 작품을 보는 우리도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여름의 태양에 시들지 않고 오히려 쭉쭉 뻗어나가며 열매를 키우는 과일이나 식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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