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미 대전 회덕중 교장 |
더욱 난처한 것은 연락을 받고 차를 빼러 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학생들의 통행을 불편하게 한 미안함보다는 학생들이 비켜 다니면 될 텐데 귀찮게 불러낸다는 격한 항의를 듣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학교 수돗가에서 오토바이를 닦기도 하고, 일과 시간 중에도 막무가내로 들어와서 운동을 하거나 떠든다. 교직원들이 제재라도 할라치면 더 큰소리로 따지고 든다. 그야말로 학교를 공공기관이라 하여 때를 가리지 않고 공공을 위해서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러한 일들을 겪다보니 궁여지책으로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게 되었다.
'경고! 이곳은 학생들의 교육장으로 안전사고 예방이 최우선입니다.', '학생들의 안전한 교육활동을 위하여 학교 내 및 교문 주변 주ㆍ정차를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사랑하는 아들, 딸, 손자, 손녀의 공부하는 학습장이오니 술을 드시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바퀴가 바닥 파손을 초래하므로 자전거, 유모차, 인라인 스케이트 등 기구를 이용한 농구장 사용을 금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학교운동장 개방시간, 학교 출입수칙, 불 피우는 행위 금지, 금연, CCTV 설치 안내 등 학생 교육을 하는 곳인지, 지역주민을 계도하기 위한 곳인지 착각할 정도로 안내하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 사건 이후 학교는 학생 안전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고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시설 하나하나도 꼼꼼히 점검하며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야하는 책임이 막중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아닌 어른들과 소모전을 벌이다보면 배려라는 책에서 나오는 소셜 아스퍼거(Social Asperger)라는 개념이 참 많이 떠오른다. 일명 사스퍼거라고도 하는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무자비하며 이기적인 범주를 넘어 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와 상반되는 미담 사례가 있다. 10여 년 전 어느 겨울 밤 주택가에서 큰 화재가 있었다. 잠결에 깬 동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고 다들 웅성거리며 불난 집을 기웃거렸다. 곧 119소방대가 와서 화재는 진압되었는데, 사람들은 불이 빨리 꺼졌다는 안도감보다는 큰 구경거리를 놓친 듯 벌써 꺼졌네 하는 왠지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런 소동이 있고난 며칠 뒤,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난번 한밤중에 불이 나서 많이 놀라셨죠? 저희가 부주의해서 동네 분들에게 피해를 끼쳤어요. 죄송해요”라며 딸기 한 박스를 주셨다. 순간 너무나 당황스럽고 미안했다. 남의 집 불을 구경거리로 생각했던 못된 마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어떤 언행을 할 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으로 상대방의 처지를 먼저 헤아려주는 지혜가 있다면 세상은 참 살만 할 것 같다. 우선 눈앞에 닥친 나의 편리함보다는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남의 편의를 한번쯤 생각하여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 같다. 결국 배려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생(共生)의 힘으로 세상은 경쟁하는 사람들보다는 배려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유지되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명심보감에 범사유인정 후래호상견(凡事留人情 後來好相見) 모든 일에 인정을 베풀면 훗날 좋은 모습으로 볼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평소 인간관계 맺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남을 위한 배려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배려'라고 이해하면서 배려의 힘을 가르치는 일에 늘 솔선수범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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