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들의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증인지원실.
연합뉴스 |
28일 오전 광주지법 형사11부(임정엽 부장판사)의 심리로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열린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공판에서 단원고 생존 학생 6명의 첫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remember 0416'가 새겨진 노란 팔찌를 차고 참석한 학생들은 친구와 선생님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비교적 차분하게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세월호 선미 4층 SP-1 선실에 있던 생존 학생 정모양은 “아침을 먹고 방에서 친구들과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며 “친구들과 함께 구명 조끼를 입자 물이 목까지 차올랐다”고 진술했다.
정 양은 “물이 차오를 때 몸이 같이 떠올랐는데 먼저 밖으로 나간 친구들이 밖에서 끌여당겨 줬다”며 “저도 나가서 친구 한 명을 잡고 끌어줬다”고 말했다.
검사가 “친구를 구하다 자신이 선실로 다시 빠질 수 있는 상황인데 친구를 건지겠다고 생각했냐”고 묻자 정 양은 “빠져도 물이 방문까지 찬 상태라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배가 기울어질 당시 선실 캐비넷에 친구 2명과 함께 들어갔다는 생존 학생 김모양은 “캐비넷 안 에어포켓에 갇혀 있는데 친구가 엉덩이를 밀쳐주고 먼저 나간 친구가 끌어줘서 나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박모양도 “물이 반 정도찬 상태에서 친구들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며 서로 받쳐줘서 방 밖으로 나왔다”고 진술했다.
반면 현장에 출동한 해경으로부터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정모양은 “해경이 직접 배로 와서 확성기나 목소리로 탈출하라는 말을 했냐”는 검사의 질문에 “없었다”고 단호히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검정색 옷을 입고 검은색 보트를 탄 해경이 배 밖으로 나간 학생들을 건져주기는 했지만 배 안쪽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 학생은 “해경이 비상구를 연 것도 아니고 먼저 나간 친구가 문을 여니까 해경이 '나왔다, 나왔다'고 했다”며 “제가 마지막으로 나왔는데 애들이 너무 많이 있다고 했는데도 해경은 구명조끼를 벗으라고만 했다”고 진술했다.
구조를 기다리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간 학생도 다수 있었다고 생존 학생들은 말했다.
승객들을 버리고 간 선원들에 대한 원망도 나타냈다.
정모양은 “방송에서 '제발 단원고 학생들 가만히 좀 있으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는데 제 친구가 울면서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왜 계속 방송을 하냐'고 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배 안에 친구들을 왜 그냥 둬야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며 재판부에 선원들에 대한 엄한 처벌을 당부했다.
[노컷뉴스/중도일보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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