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오후 5시께 대전역에서 길을 헤매던 이모(78)씨가 시민의 손에 이끌려 동구 중앙동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 안내됐다. 발견 당시 이씨는 오른쪽 눈이 감긴 채 백내장 현상을 보였고, 한쪽 발에 상당한 통증을 호소했다. 또 자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는 오늘이 며칠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초기 치매증상을 보였으나, 정상적인 대화는 가능했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 김태연 국장은 “몸의 여러 곳에 치료가 필요해보였지만, 신분이 확인되지 않았고 가족들의 연락처나 집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노숙인지원센터는 다음날 이씨와 함께 동부경찰서를 찾아가 지문을 조회해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이씨는 2009년 법원에서 실종선고를 받아 그의 가족이 동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해 행정상 사망자로 처리된 상태였다. 이에 앞서 이씨는 경찰에 2003년께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가출인 신고가 접수된 상황이었다.
실종신고 후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서 5년 이상 지속되면 이해관계인이나 검사의 청구로 가정법원이 실종선고를 할 수 있고, 이는 행정상 사망처리로 이어진다.
이렇게 행정상 사망자가 된 이씨는 의료 지원을 포함해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 혜택을 하나도 받지 못했고, 주민번호 없는 이씨는 노숙인시설에서도 생활할 수 없었다.
대전노숙인지원센터가 긴급잠자리를 제공해 보호하는 동안 동구청이 이씨에게 사회보장 임시번호를 부여해 이씨는 이달 초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실정이다.
문제는 아버지 생존을 파악하고도 가족들이 부양을 외면했고, 이로인해 이씨가 기초생활수급 자격도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노숙인지원센터는 이씨 아들에게 전화해 이같은 일을 알렸으나, “다시는 전화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지금껏 연락되지 않는다.
이어 기자가 25일 또다른 아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알렸으나 “되돌릴 생각이 없다”고 밝혀왔다. 이씨의 아들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가족에 큰 상처가 있었고, 실종선고와 사망을 바로잡을 생각 없다. 가정사에 의한 일이다”며 말을 아꼈다.
생존한 아버지의 행정상 사망자 신분을 아들이 바로잡지 않겠다고 거부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 김의곤 소장은 “법률구조공단에 의뢰해 이씨의 사망자 신분을 생존자로 바로잡는 과정을 밟고 있다”며 “호적을 되살리더라도 부양하지 않는 가족때문에 기초생활수급 자격에서 탈락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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