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감]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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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감]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우난순 교열팀장

  • 승인 2014-07-24 13:58
  • 신문게재 2014-07-25 17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우난순 교열팀장
▲우난순 교열팀장
경북 문경에 있는 주흘산은 내게 처음으로 산에 대한 공포감을 안겨준 곳이다. 주흘산엔 여섯 개의 바위 봉우리로 이뤄진 '육봉이'가 있다. 난코스지만 나의 호기심이 도전정신을 부추겼다. 곧 잘못 들어선 걸 깨달았다. 봉우리 양 옆은 깊은 낭떠러지고 오가는 사람 한 명도 없었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온 몸의 피는 손끝으로 빠져나가는 듯 했고 입안의 침은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내 거친 숨소리와 울먹거림만이 적막감을 또렷하게 할 뿐이었다. 자칫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내 육신은 백골이 진토되어 영원히 묻힐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몸이 떨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기도했다. “하느님. 살아 내려가게만 해주세요. 제발!”

인간은 왜 신을 찾을까.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 한구석엔 늘 불안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을 찾고 종교가 생겨난 이유다. 프로이트는 “종교란 일종의 집단적 강박신경증의 결과물”이라고 했지만 분명 종교는 삶의 매우 중요한 현실이다.

그러나 종교가 갖고 있는 허물들은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종교의 허물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인간의 무지와 편견, 독선 때문이다. 서양 중세의 교회는 방탕함이 극에 달했었다. 중세 교황은 무소불위의 권력의 상징이었다. 황제의 왕관을 수여하거나 뺏을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교황청은 사치와 탐욕과 부도덕으로 악명높은 곳이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대 전환기를 가져왔지만 교황의 전횡은 오랫동안 이어져 민중들이 치를 떨었다.

가톨릭을 싫어했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교황을 아예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1953년 작 '교황인노켄티우스 10세 초상에서 출발한 습작'은 보는 이에게 불쾌감과 전율을 느끼게 한다. 아래턱이 떨어진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은 끔찍하다. 마치 해골의 형상같다. 교황의 모습에서 우리는 감히 기분 나쁜 공포의 근원을 찾게 된다.

전임 교황들과 달리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기가 상한가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로 뽑히는 가 하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숭배한다고까지 했다. 그야말로 '시대의 아이콘'이자 슈퍼스타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의 모든 것이 폭력과 비참함과 무참한 유혈로 귀착되고 있는 상황이다.

빈자와 약자를 우선시하고 무력사용에 반대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전세계인이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남미 출신인 그의 이러한 신념은 20세기 중ㆍ후반 남미에서 태동한 해방신학의 모토였다. 교회가 정치가들과 야합해 민중을 억압했다는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해방신학은 시작됐다.

그렇다면 우리 종교계는 어떤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갖고 있는 한국기독교의 반성적 성찰은 가능한가. 한국교회가 정부의 부패나 악행에 저항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친정부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얼마전 한기총 조광작 목사는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에게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가 이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예수의 죽음은 불의한 세력에 대한 저항의 결과였다. 그리스도교는 부패하고 부조리한 세력 앞에서 침묵해선 안된다. 예수의 대리인은 고뇌와 갈등이 버무려진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교황, 교회의 힘은 민중들으로부터 나온다”고 설파하지 않았나. 염려되는 것은 자칫 교황의 한국 방문이 이벤트적이고 왜곡되지 않을까 하는 거다. “교황의 메시지에 귀기울여 달라”는 교황청의 요청을 정부와 교계는 의미심장하게 새겨들어야 하는 대목이다.

일본의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는 “자신이 하는 일을 종교라고 생각하는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도처의 인간들은 예수와 알라와 부처의 이름을 팔아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무신론자인 나는 '육봉이'를 넘으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단 1초도 고뇌하지 않았다. 내 일신의 안위를 위해, 속물적 욕망을 꿈꿀 때 나는 거리낌없이, 얍삽하게 또다시 '신'을 갈구할 것이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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