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전 국제로타리3680지구 총재 |
옆에서 오래 보아온 내 눈에는 옳은 일이면 가시밭길도 걷고, 옳지 않은 일이면 억만금이 생겨도 내치는 구도자이자 전파자다. 마음이 곧아서인지 풍기는 모습과 피부가 나이보다 20~30년 젊게 보인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많은 인연 중에 유명한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이 있다.
먼 옛날, 임동창 선생이 불가에 귀의하던 시절에 보선 스님과 도반이라는 인연으로 만났다고 들었다. 보광사에는 신도 수보다 스님과 얘기하고 신세한탄 하러, 그리고 임동창 선생과 밤새 노래 부르러 들르는 사람 숫자가 훨씬 더 많다. 이런 인연들이 합쳐지다 보니 많은 예술가들이 보광사에 모였고, 자연스럽게 산사음악회를 열어보자는 방향으로 의기가 투합되었다. 어렵게 마련한 천 만원 예산으로 산사음악회를 치른 것이 7년 전이다.
무대 만들고 음향 설치하는 비용도 되지 않는 예산이었다. 출연진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대단한 분들이었다. 출연료 1억원을 주어도 모시기 힘든 예술가들이 자진해서 모였다. 출연이라기보다 흥겨운 놀이마당에서 '한바탕 놀아보자'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얼마 되지 않는 출연료도 슬그머니 도로 놓고 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모두 임동창 선생, 보선 스님과 얽힌 인연들이다. 출연진과 관객 중에는 천주교도도 있고, 기독교 목사님도 있다. 유불선(儒彿仙)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이니 자연스레 소통과 화합이 이루어진다. 종교에서 소통이 이뤄지니 보광사에서 이뤄지지 않을 일이 하나도 없다. 보광회라는 이름의 후원단체도 생겼다.
충남도 농정국장을 역임한 박범인 회장을 비롯한 산사음악회를 사랑하는 100여 명의 회원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1년에 몇 번 보광사에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밤을 지샌다. 후원자 중 한 분인 장석열 목사는 보광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금산제일교회의 류흥수 장로, 신부는 재즈가수 유미경 선생이다. 유미경 선생도 출연진 중 한 분이었다.
올해에도 2000만원의 예산으로 일곱 번째 산사음악회를 개최한다. 예산 확보에 도움 주는 사람들은 많지만 일등공신은 안희정 지사와 김석곤 충남도의원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들이 함께 도와주니 정치색도 없다. 올해에도 예년과 같이 8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에 열린다.
전국 각지에서 초파일 방문객보다 훨씬 많은, 600~7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작은 절 보광사에 모인다. 신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어주는 연밥과 떡으로 요기를 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인연이 만들어진다.
공연이 시작되면 사물놀이와 판소리, 그리고 춤사위가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성악과 피아노가 이렇게 멋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트로트가 뽕짝이 아닌 훌륭한 예술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렇게 예술에서 통섭이 이루어진다. 임동창 선생이 어떤 노래와 춤사위도 피아노로 반주해줄 수 있는 내공이 가장 큰 힘이다. 그리고 고즈넉한 산사, 금산 시내 전경이 그대로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공기가 음악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음악과 박수와 환호가 어우러지는 화합의 한마당은 밤 11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난다.
거의 모든 출연진과 보광회 회원들, 그리고 헤어지기 아쉬운 마니아들에게는 공연 후 시간이 더 중요하다. 뒤풀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2부 공연은 밤 11시께부터 시작해서 새벽까지 이어진다. 나는 한 번 뒤풀이에 끼었다가 밤새 흥겹게 놀고 며칠 앓았던 경험이 있다.
늦여름 밤에 산속 작은 절에서 펼쳐지는 음악의 향연을 경험해본 분은 바로 다음 해 공연을 기다린다. 이 멋진 경험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을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종교와 정치와 삶의 갈등을 잊고 싶은 분이라면 더욱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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