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너무 흔히 쓰고 있어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연필을 깎아 쓰던 추억을 더듬어 보자. 요즈음은 여러 가지 자동 필기구들이 있어서 연필을 손으로 직접 깎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심지어는 어린 시절부터 연필보다는 다른 필기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연필을 깎는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지낸다. 설령 연필을 깎을 일이 생긴다 해도 손잡이를 돌려 연필 깎는 기계로 깎거나 전동장치가 붙어있는 연필 깎는 기계에 연필을 끼우면 자동으로 깎여 나오기 때문에 연필을 깎을 일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볼펜을 비롯한 다른 필기구들은 흔하지도 않았고 비쌌기 때문에 연필을 주로 썼다. 연필도 향나무에 연필심을 박아서 잘 깎이는 고급 연필 또한 비싸서 어쩌다 선물이나 상품으로 받으면 아껴 쓰곤 하였다.
보통 연필들은 잘 깎이지도 않고 잘 써지지도 않는 연필들도 있었다. 연필 깎는 칼들도 요즘처럼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창칼이나 부엌칼 같은 것으로 깎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부러진 쇠톱을 갈거나 굵은 대못을 납작하게 만들어 갈아서 쓰기도 하였다. 특히 철길 옆에 사는 아이들은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굵은 대못을 철길 사이에 끼워서 철길 위에 올려놓으면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 납작해져서 숫돌에 갈아서 쉽게 작은 칼을 만들 수 있었다.
용돈이 있는 아이들은 주머니칼이라고 하여 칼날에 칼집이 붙어있어 여닫을 수 있는 칼을 주머니나 필통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연필을 깎아 쓰곤 하였다. 그 뒤에 면도칼처럼 날카롭고 잘 드는 플라스틱 칼집이 달린 주머니칼이 등장하여 연필을 깎다가 엇나가거나 미끄러져서 손가락을 베이곤 하였다.
연필을 깎는 일 또한 손 감각을 정교하게 익혀서 솜씨를 갖추는데 도움이 되곤 하였다. 연필도 울퉁불퉁하게 못 깎는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솜씨 좋게 잘 깎는 친구들도 있었다. 연필심도 요즈음처럼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딱딱하여 글씨를 쓰다가 공책이 뜯기거나 찢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너무 흐릿하여 연필심을 혓바닥에 찍어 침을 묻혀 꾹꾹 눌러 쓰던 기억 또한 새롭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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