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관 대전예술의전당 관장 |
게다가 그의 손을 거치는 작품은 대부분 수작이다. 대한민국 예술계의 상이란 상이 모두 그에게 주어진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그가 빚어 낸 예술적 성과의 백미(白眉)로 나는 '밀양여름공연예술제'를 꼽는다. 이름은 세련되지 않았어도 13년 전, 한 폐교에서 시작된 이 예술축제는 밀양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전국에 알려져 관객의 65%가 밀양 바깥에서 올 정도다. 문화부 평가에서도 전국 15개의 연극축제 중 유일하게 A등급을 4년 연속 받기도 했다. 지난주 그를 대전예술의전당 직원 교육 프로그램인 '예당 포럼 2.0'의 강사로 초대했다. 그의 이런 막강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물었다. 그는 한마디로 '결핍'이라고 했다. 3대 째 외동아들로서의 외로움이란 결핍이 그의 재능과 결합하여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들을 어울리게하는 예술적 에너지로 승화된 것이다.
지난 3월, 직원들과 국제음악제가 열린 통영을 다녀왔다. 마침 남도 바닷가에 멋진 음악당이 들어선 참이라 공연장도 둘러보고 축제도 벤치마킹하면서 여러가지를 눈여겨볼 수 있었다. 한국 공연계의 낯익은 얼굴들도 많이 보였다. 공연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얼굴을 내민다는 것은 그만큼 축제가 전국적인 혹은 국제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개막공연도 많은 관객들로 붐볐다. 남도의 외진, 인구 14만의 작은 도시에 이들을 모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이라는 콘텐츠와 다른 곳에서는 듣기 어려운 현대음악, 한려수도의 풍광, 충무김밥과 회 등 먹거리, 그리고 여행이라는 매력이 버무려진 아우라가 그 동인일 터이다.
대전의 문화지형 상상하기 세 번째는 예술축제다. 왜 예술축제인가. 모름지기 축제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무언가를 축하하거나 기원하기 위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잔치나 제의(祭儀)이다. 일정기간 일상을 탈출하여 축제를 함께 즐기고 노는 가운데 이른바 공동체의식을 갖게 된다. 오늘날의 축제는 특정 상품을 알리기 위한 마켓이나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예술축제는 한층 집약적이자 다기능적이다. 집약된 공간에서 집약된 기간 동안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중심으로 향유, 교육, 마켓, 도시브랜드, 심지어 새로운 예술적 방향의 제시까지 예술축제가 갖는 기능은 다양하다.
멀리 프랑스의 아비뇽이나 영국의 에든버러,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까지 비견될 수는 없지만 한국에도 그럴싸한 브랜드의 예술축제들이 많다. 연극과 무용의 서울공연예술제, 클래식 음악의 통영국제음악제와 대관령국제음악제, 연극으로는 의정부음악극축제, 밀양여름공연예술제, 무용장르로는 서울국제무용제, 한국현대무용제 등이 그것들이다.
대전은 어떤가. 대전에도 숫자로는 예술축제들이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이 축제들은 대부분 음악장르로 편중된다. 공연계 인사들이 얼굴을 내미는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축제가 없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러고 보니 예술축제만큼은 대전이 매우 약하다.
이제는 대전도 높은 지명도의 예술축제를 가질 때가 되었다. 공연장 지형도가 형성되려면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지만, 예술축제는 짧은 시간과 적은 자본으로도 가능하다. 먼저 대전예당이 올 여름부터 연극과 무용, 음악이 어우러지는 '대전 코메디아츠 페스티벌(CoAfe)'을 출범시킨다. 실컷 웃겨 놓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 예술축제를 말이다. 예술축제 지형도 상상을 넘어서 바로 실천인 셈이다. 이 축제가 시민들의 웃음의 결핍, 소속감의 결핍을 공동체성의 회복으로 승화시키는 지명도 높은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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