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회덕'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회덕(懷德), 덕을 품는다는 뜻이다. 회덕이라는 지명이 그냥 불려진 것은 아니다. 우리 보다 먼저 회덕에 살며 덕을 몸소 보여준 분들이 계셨다.
▲ 박팽년 선생 유허비(대전시 동구 가양동 소재). |
1455년 계유정란이 일어나자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김질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추진하다가 실패하고, 체포되어 국문을 받다가 옥중에서 죽는다. 박팽년을 비롯한 사육신들은 이후 조선시대 대표적인 충신으로 인정됐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원을 위해 노력했다.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선생이 사셨던 곳에 비석을 세웠는데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이 비석이 바로 박팽년 선생 유허비다. 동구 가양동에 가면 유허비를 볼 수 있다. 박팽년은 세조가 살려 주려 했지만 끝까지 충정을 굽히지 않은 이유를 묻자 “마음의 중심이 편치 않아서” 라고 답했다. 바로 이것이 덕을 실천한 것이다.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송준길=동춘당 송준길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다. 학문적으로 송시열과 함께 이이를 계승한 유학자로서 경을 강조했다. 스승인 김장생으로부터 예학의 대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효종이 즉위 하면서 북벌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지방에 거주하던 선비들을 관직에 기용하는 정책을 펼치자 송시열과 함께 효종을 도와 북벌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예송논쟁에 연루되기도 했으나, 말년에 고향인 회덕에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고, 회덕향약을 만들었다. 저서로는 동춘당집, 어록해가 전해지고 있다. 문묘에 배향된 18현 중에 한 분으로, 공주 충현서원, 회덕의 숭현서원에 모셔져 있다.
대덕구 송촌동 소재 동춘당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살았던 집의 별당의 이름이다. 보물 209호로 지정 될 만큼 지역에서 아주 소중한 곳이다. 동춘당 굴뚝은 세워 달지 않고 온돌방 밑에 연기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이것은 마땅히 선비가 지켜야 할 덕의 표현인 것이다.
▲ 우암 송시열이 말년에 세운 남간정사(대전시 동구 가양동 소재). |
1649년에 효종이 즉위하자 옛 스승인 송시열을 기용하는데 이 때 올린 기축봉사가 효종의 북벌의지와 부합하여 북벌의 핵심 인물로 발탁되는 계기가 됐다. 1659년 효종이 급서한 뒤 예송논쟁이 일어나고, 국왕 현종에 대한 실망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국가 최고 대우를 뜻하는 봉조하에 이르기도 했다.
1689년 숙종15년에 희빈 장씨의 아들(후일의 경종)을 왕제자로 책봉하는 것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유배됐고, 그 해 6월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됐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되자 복권됐다.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나 나올 정도로 학문적, 정치적 위상이 대단하다. 한 시대를 풍미 했던 송시열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후에 정조는 송시열을 공자, 주자, 맹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우암의 저서들을 주자대전과 같이 송자대전이라고 명 할 정도였다. 지금도 전국 42곳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다.
▲붓으로 일제에 맞선 역사학자, 신채호=단재 신채호는 일제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 언론인이다. 1880년 현 대전시 중구 어남동 도리미 마을에서 태어났고, 8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청원으로 이사했다.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는데 10여세에 통감과 사서삼경을 독파할 정도로 학문에 뛰어나 신동이라 불렸다. 어남동에 가면 선생님이 8살까지 사셨던 생가가 있다. 원래는 묘지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오두막집이었다.
할아버지는 손자인 신채호가 성균관에 입학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배우는 것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많이 배운 학식을 자기 개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올바르게 쓰는 것을 말한다. 남보다 많이 배우는 것도 어렵고, 배운 것을 올곧게 쓰는 것은 더 어렵다.” 손자는 이 말을 잊지 않았고, 일생을 그렇게 살고자 했던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말해주고, 보여주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순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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