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희생 학생들의 발인을 하루 앞둔 2013년 7월 23일 밤, 당시 서만철 공주대 총장과 공주사대부고 총동창회 사무총장, 교육부 사무관(보상업무) 등이 유가족을 찾아왔다. 사고 다음날 태안의료원을 찾은 당시 교육부 장관이 약속한 사안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유가족들의 요구 사항은 여섯 가지였다.
국가보상금과 특별위로금 지급, 공주사대부고 총동창회 주도로 장학재단 설립, 교내 제막비와 흉상 등 희생 자녀 명예회복, 국가차원의 의사자 건의, 명예졸업장 수여 등이다. 모두 수용하기로 하고 서만철 총장이 컴퓨터로 작성해 인쇄한 합의서에 '교육부 장관을 대신해 공주대 총장이 확인함'이라고 쓰고 서 총장과 유족대표가 함께 서명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8월 유가족들은 교육부 보상팀을 만났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특별위로금을 절반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유족들은 약속을 어겼다며 수용을 거부했고, 오는 18일 참사 1주기를 앞둔 현재까지도 아무런 답이 없다.
참사 희생자 유가족 대책의 대표적인 폐단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유가족들은 합의 당시 공황상태에 빠져 꼼꼼히 살펴 논의할 수 없어 정부를 믿었지만, 배신을 당한 셈이다. '공무원으로 합의서에 금액을 표기하는 것은 징계사유에 해당되니 이 점을 양지하셔서 살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는 점을 받아들여 합의서에 서명했지만, 교육부는 결국 문제가 발생하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치밀함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식 유가족 대표는 “고통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찾아와 설득하더니 결국 우리에게 비수를 꽂았다”며 “유가족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것으로, 이 사실을 온 국민에게 알려 정부의 비양심적인 양면성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공주사대부고와 직접 계약한 후 위탁사슬을 만든 태안의 H 유스호스텔과 유스호스텔의 모(母)기업인 경기 안산의 H사 등은 참사 책임에서 비켜나갔다. 사실상 운영 전반에 대한 전권을 휘두르면서 속칭, '바지'를 내세워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다.
10명의 희생자를 낸 경주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참사에 책임을 진 코오롱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이 참사에 대한 보상문제도 처음엔 심각했다. 리조트를 운영하는 코오롱 측이 사고를 대비해 재산종합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도를 낮게 설정했다. 건물이 붕괴된 재물손해에 대해선 5억원 한도로 보상할 수 있지만, 사고는 인(人)당이 아니라 건(件)당 1억원으로 한도를 정해놨기 때문에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사고로 받을 수 있는 인명피해 보험금은 총 1억원에 불과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대기업인 코오롱이 1인당 5억원 안팎의 보상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고, 부산외대도 모든 장례비용을 부담하고 숨진 학생들에게 명예입학ㆍ졸업장 수여, 교내 추모비 건립 등과 보상금도 원만히 합의한 상태다.
모 기업 관계자는 “기업의 경우 자칫 책임 소재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면 이미지 타격 등의 직ㆍ간접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리를 내세우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법적 책임을 묻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참사 대책의 원칙과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별개의 사안으로 접근해 '꼬리자르기식'의 대처와 보상, 책임 소재 등을 논의하는 게 아니라 유사한 성격의 참사를 단일한 법에 따라 단일한 기구가 직접 전담하는 체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대전의 모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참사가 터질 때마다 관련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지만 사실 소모적 논쟁이 되기 쉽다”며 “특정 사안에 대한 특별법이 아니라 단일 사안으로 묶어 통일되게 적용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희진ㆍ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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