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잉크나 잉크병은 고급 만년필과 함께 지금도 고급 진열대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잉크스탠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잉크스탠드는 네모꼴 판 좌우에 잉크병과 펜대꽂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연필을 쓰다가 중학교 때부터 잉크를 쓰기 시작하였다. 글씨를 바르게 쓰기 위하여 볼펜은 쓰지 못하도록 하였다. 반드시 잉크와 펜촉, 펜촉을 끼워 쓰는 펜대를 가지고 다녀야했다. 그런데 잉크가 문제였다.
잉크는 액체로 작은 잉크병에 담겨져 있었는데, 잉크 병뚜껑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잉크가 새어나와 책이며 공책 등 가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물들이곤 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다 잉크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새어나오면 교복을 염색하는 지경에 이르고 잉크는 한번 물들면 잘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옷에 묻은 잉크를 잘 빼내는 '생활의 지혜'까지도 서로 나누곤 하였다.
잉크병에서 잉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하기위해 잉크병에 스펀지를 채워 넣고 쓰기도 하였는데, 당시에는 스펀지도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퍼나 다른 곳에 들어있는 스펀지를 떼어다가 넣어 쓰곤 하였다.
작은 스펀지 조각이라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유용한 곳에 재활용하곤 하였다. 잉크와 펜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펜대에 끼워 쓰는 펜촉은 누르는 정도에 따라 글씨가 가늘거나 굵게 되었고, 너무 눌러쓰게 되면 벌어져서 다시 오그라들지 않아 버리고 다른 펜촉으로 갈아 쓰곤 하였다.
펜글씨 연습을 위한 '펜글씨 교본'이란 따라 쓰는 공책도 있었는데, 특히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알파벳을 펜으로 따라 쓰면서 익히는 마치 음악공책처럼 줄이 쳐져 있는 공책도 있었다. 펜대도 가지가지로 멋지게 장식한 것들도 있었으며, 펜대가 없을 때는 볼펜 뒤쪽에 끼워 쓰기도 하였다. 오늘 하루 쯤 잉크로 펜글씨를 쓰다가 손가락과 손바닥을 온통 잉크로 물들였던 추억에 잠겨보자.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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