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진 한남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ㆍ컬쳐전공 교수 |
우리나라의 민선 지방자치는 1995년 1기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변해왔다. 특히 지역민의 참여가 강조되어 왔는데, 당내 경선, 주민투표, 주민자문단 및 각종 공청회 등 선거, 입안, 정책결정 등 많은 분야에서 지역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활용되고 있다. 지역민들 역시 자신의 이익과 신념을 대변하는 각종 이익단체 및 시민집단을 통해 보다 강조된 권리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지역민의 참여가 높아진 데에는 이와 같은 제도적 근거 외에도 개인이 대중을 상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다양화되고 그 방법 또한 과거에 비하여 쉬워진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대비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최상위권이고, SNS와 같이 인터넷에 기반한 모바일 통신서비스는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개인의 의견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극명한 예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 선거 결과는 한 후보의 딸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자신의 SNS에 올린 글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물론 SNS가 없었다 하더라도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SNS는 '보도'가 아닌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피력한 것으로 보도보다 직접적이고 빠르고 대중과의 거리가 가깝다. 한 개인의 의견이 거대 언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여론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처럼 모바일 인터넷을 위시한 지금의 뉴미디어 환경에서는 과거에 비해 보다 많은 의견들이 피력되고 의견의 다양성 또한 매우 높아졌다.
다시 말해 지역민들의 보다 다양한 이익과 신념이 표현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다양한 의견들이 모이는 실제적 또는 가상적 공간을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공론장(public sphere)이라고 부른다. 각종 공청회 및 토론회, 신문 사설, TV 토론, 인터넷 댓글 등 모두가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의견과 이익의 추구가 넘쳐나는 공론장에서 민선 단체장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숙의(熟議)다. 숙의란 깊이 생각하고 논의한다는 의미다. 또한 숙의는 투표와 같은 집단의사결정방법이기도 한데, 투표와는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는 양적 집단의사결정방법인 투표와는 다소 대비되는 질적 집단의사결정방법 중의 하나라는 점이고, 둘째는 투표는 이 것 아니면 저 것이라는 취사선택의 개념인 것에 비해 숙의는 여러 옵션들 중 논의를 통하여 새로운 옵션을 창출할 수 있는 변증법적 개념이라는 점이다. 숙의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단, 숙의민주주의에는 한 가지 중요한 요건이 따른다.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이견을 경청하고 수용할 의사와 능력, 즉 관용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에 새로 출범한 자치단체장들과 그 지방정부가 자신들이 제시한 시정 및 도정 목표와 추진계획을 수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일자리 창출, 도시철도 2호선의 고가 또는 지상화, 원도심 개발, 과학비즈니스벨트, 엑스포과학공원의 복합테마파크화 등 산재한 대전의 현안에 대해 단순히 시민이 참여하는 형태에서 더 나아가 참여를 통해 표현된 시민의 의사를 정치와 행정, 그리고 입법의 과정에서 의미있게 고려하고 숙고하는 질적으로 보다 성숙한 시정운영의 능력이 이제 필요하다.
아울러 추진과정에서 마주칠 대립 또는 경쟁 구도에서 자신의 논리와 원칙만 고집하기 보다는 이견을 경청하고 숙의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보완하여 보다 완성된 정책으로 이끌고 지지의 폭을 넓혀야 한다. 적극적인 비판 수용을 통해 논의하고 개선하는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라 불리는 숙의의 기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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